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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말라는 학교에서 시를 가르친 교사, 프랑스 소설 『교사들의 고독은 무한하다』 리뷰

첫 출근 날, 스물두 살의 젊은 교사는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혼이 났다.교실에 들어가 보기도 전이었다.그는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교외철도와 기차를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이동해 파리 외곽의 중학교에 도착했다. 첫 출근에 늦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알고 보니 교직원 회의가 시작되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학교 정원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던 중, 학교 직원이 달려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앗았다.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제정신이냐는 것이었다.그날 교장은 젊은 교사에게 또 하나의 조언을 건넸다. 수업에서는절대 웃지 마세요 학생들에게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며칠 뒤,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 선 젊은 교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아이들과 함께 시를..

이별과 기억을 담은 프랑스 소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 리뷰

네가 좋아하던 유리컵을 깨뜨렸어.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한 여자가 헤어진 연인에게 말을 건넨다.그녀가 깨뜨린 것은 1980년대 만화 주인공 히맨이 그려진 오래된 겨자 유리컵이다. 프랑스에서는 한때 겨자를 유리컵에 담아 판매했고, 겨자를 다 먹으면 컵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남자는 몇 해 전 벼룩시장에서 그 컵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사용했던 컵과 똑같다며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값을 흥정해 2유로에 구입했다. 여자는 그때 기뻐하던 남자의 모습을 기억한다.그 무렵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괜찮았던 것 같다.아니, 정말 괜찮았던 걸까?이제 그녀는 그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다. 클레망틴 멜루아(Clémentine Mélois)의 소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Choses que je croyais p..

1949년 파리 미해결 살인 사건, 『자벨 부두의 신원 미상 여성』 리뷰

1949년 9월 7일 새벽, 파리 센강변의 한 도로에서 젊은 여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여자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가방도 없었다. 옷은 누군가 급하게 다시 입힌 듯했고, 목에는 교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새벽 1시 30분 무렵, 자동차를 몰고 귀가하던 한 남자가 어두운 도로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현장에는 여자의 신원을 알려줄 만한 물건이 없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인적이 드문 강변이었고, 경찰은 그녀가 다른 장소에서 살해된 뒤 옮겨졌을 가능성을 의심했다.그러나 그날 저녁, 여자의 이름은 밝혀졌다.루이즈 캉소(Louise Cansot). 스물아홉 살의 젊은 여성으로, 파리 몽파르나스에서 화가들의 모델로 일하고 있었다.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그녀가 살던 호텔을..

실종된 사진가, 실뱅 프뤼돔 『호수 건너편』 줄거리와 리뷰

9월의 어느 아침, 프랑스의 한 산골 마을. 등산을 준비하던 남자가 작은 주차장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여자는 조금 전 헬리콥터를 타고 산에서 내려온 참이었다. 무거운 사진 장비를 자동차에 싣고 있던 그녀에게 남자가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다.여자는 잠시 망설이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진다.함께한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이후 두 사람은 몇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언젠가 다시 만나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하지만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날, 여자가 산속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뱅 프뤼돔(Sylvain Prudhomme)의 소설 『호수 건너편(De l'autre côté du lac)』은 이렇게 시작한다.짧은 만남, 몇 통..

『동양 이야기』,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단편 4편 줄거리와 해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의 『동양 이야기(Nouvelles orientales)』는 중국·일본·인도·그리스·발칸반도의 신화와 전설을 새롭게 풀어낸 단편집이다. 1938년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작가의 수정을 거쳐 열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에서 잔혹하고 기묘한 전설까지.작품에 실려 있는 단편 중에 흥미로운 네 편을 골랐다. 그림 때문에 황제의 미움을 산 화가늙은 화가 왕포는 제자 링과 함께 중국 곳곳을 떠돌았다. 밤에는 별을 바라보고, 낮에는 잠자리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왕포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그림으로 옮기는 일이 그의 삶이었다.링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고, 아름다운..

『베러티』 영화와 원작 소설의 7가지 차이, 그리고 달라진 결말

콜린 후버(Colleen Hoover)의 심리 스릴러 『베러티(Verity)』가 영화로 돌아왔다.2018년 출간된 원작은 한 여성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원고를 통해 다른 작가의 끔찍한 비밀에 접근하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이야기가 사실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마이클 쇼월터(Michael Showalter)가 감독을 맡고, 앤 해서웨이가 베러티, 다코타 존슨이 로웬, 조시 하트넷이 제러미를 연기했다. 영화는 원작의 기본적인 이야기와 반전을 유지하면서도 등장인물의 관계, 일부 사건, 마지막 장면을 변경했다.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이야기를 압축하거나 영상에 적합하게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건을 보여주고 ..

Review/문학 2026.10.20

카뮈의 가장 불편한 작품 『전락』 줄거리와 결말 해석

개인적으로는 카뮈의 가장 불편한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전락』을 떠올린다.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신랄하고, 냉소적이며, 자기비판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작품을 이해할 때 눈여겨볼 것은 사건뿐 아니라 그 사건을 들려주는 사람이다.우리는 한 남자의 고백을 듣지만, 그가 누구를 위해 고백하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작품 소개소설의 무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술집 멕시코 시티이다.파리에서 성공한 변호사였던 장바티스트 클라망스(Jean-Baptiste Clamence)가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그는 한때 정의롭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그러나 어느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믿었던 도덕성과 선의가 실은 허영심과 자기만족에 불과했을지..

한 권으로 앤 카슨의 작품 세계를 맛 볼 수 있는 작품,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작품 분석

앤 카슨(Anne Carson)의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Glass, Irony and God)』은 사랑과 상실, 종교와 언어, 여성의 목소리를 다룬 여섯 편의 작품을 묶은 책이다.이 책에서 카슨은 이별한 여자의 일상과 고대 그리스 문학, 성경 속 예언자와 현대의 텔레비전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언뜻 아무 상관 없어 보이지만, 작품들 사이에는 반복해서 나타나는 시선들이 있다.우리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얼마나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그리고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는 왜 처음부터 들을 만한 말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이번에서는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에 실린 여섯 작품의 주요 장면을 따라가면서, 카슨이 서로 다른 문학 형식으로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살펴본다. 작품 ..

Review/문학 2026.10.15

사랑을 바라보는 앤 카슨의 시선, 『에로스, 달콤씁쓸한』 작품 분석

높은 나뭇가지 끝에 잘 익은 사과 하나사과 따는 사람들이 깜빡 잊고 남겨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Sappho)는 이 장면을 짧은 시로 남겼다. 사과의 향기 앤 카슨(Anne Carson)은 손에 닿지 않는 이 사과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핵심을 발견한다. 누군가를 원한다는 것은 아직 그 사람에게 닿지 못했다는 뜻이고, 바로 그 거리가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1986년에 나온 『에로스, 달콤씁쓸한(Eros the Bittersweet)』은 사랑과 욕망의 모순을 고대 그리스 문학과 철학으로 파고든 앤 카슨의 초기 대표작이다. 국내에는 2025년 황유원의 번역으로 난다에서 출간되었다.사랑은 기쁨을 주지만 고..

Review/문학 2026.10.14

사랑과 거짓말을 담은 29번의 탱고, 『남편의 아름다움』 줄거리와 상징 정리

남편이 다른 여자의 사진을 내밀었다. 아내는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렸다.물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깨진 것은 유리창이 아니었고,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그녀의 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아내는 추락하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앤 카슨(Anne Carson)이 2001년에 발표한 『남편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the Husband)』은 한 여성의 결혼과 이별을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풀어낸 작품이다. 남편은 매력적이지만 거짓말을 멈추지 않고, 다른 여자들을 만난다. 아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그토록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왜 그를 사랑했을까?아름다움 때문이었다.아름다움은 어떻게 한 사람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이번에는 작품의 줄거리..

Review/문학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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