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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

프랑스 문학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by suis libris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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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프랑스 문학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다. 그러나 한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은 각기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 속에서 사랑을 표현해 왔기에, 그 방식과 뉘앙스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한국 문학사에서 근대 이전까지는 개인적 연정(戀情)이 유교적 질서에 눌려 숨죽여 있었으나,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연애라는 낭만적 사랑 개념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반면 프랑스 문학은 중세의 궁정연애부터 19세기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거치며 일찍부터 사랑을 문학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심리의 깊이까지 파고드는 사랑 묘사를 발달시켰다​.

그렇기에 문학에 나타난 사랑의 표현 방식 또한 무척이나 차이를 보인다. 역사·사회적 배경, 주요 작가와 작품 사례, 감정 표현의 문화적 특징, 언어적·서사적 기법의 차이, 그리고 성 역할과 사랑 묘사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보자.

 

 

 

'사랑하는 사람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사랑하는 사람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사랑 표현에 미친 영향

한국에서 개인적 사랑(낭만적 연애)이 문학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조선 후기 일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봉건 질서에 균열을 내는 개인적 욕망의 분출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적인 친밀성의 영역으로서의 연애가 부각된 것은 20세기 초 근대 개화기 이후에서야 시작되었다.

연애라는 말 자체도 19세기 말 일본에서 영어 love를 번역한 것에서 유래하여 들어온 근대적 개념이었다​. 1910년대에 이르러 남녀 간의 자유연애와 평등한 결혼을 이상으로 내세우는 담론이 등장했고, 이광수의 『무정』(1917)에 이르러서야 근대적인 남녀 간 사랑을 본격적으로 그린 한국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이 등장했다.

 

 

이광수의 『무정』, 초판본
이광수의 『무정』, 초판본

 

 

그러나 이러한 연애 이상이 곧바로 현실에서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애국계몽기에는 여전히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는 여성상이 강조되었고, 연애 감정마저 민족주의적 규범 속에 가두려는 경향이 이어졌다.​ 당시 신여성들은 도시의 모던걸로 등장해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었지만, 사회는 그들을 여전히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규범의 범위 안에 묶어두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때문에 한국 근현대 문학 속 사랑은 사회적 금기와 충돌하거나 전통 윤리와 갈등하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졌다. 실제로 '사랑의 열정은 이 사회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이 사회를 거부하는 반사회적인 것'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많은 한국 문학 작품들이 가부장적 제도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금지된 사랑을 다루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한편, 한국전쟁과 산업화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사랑은 이념 대립이나 계급 차이, 도시화 등 사회변동과 결부되어 그려지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한국 문학의 사랑 표현에는 역경 속 희생과 인내, 또는 한(恨)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린 경우가 많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일러스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일러스트

 

 

반면 프랑스 문학은 오랫동안 사랑을 문학적 매력의 정수로 여겨왔다. 18세기에는 에피스톨러리 소설(편지체 소설)과 풍자를 통해 사랑을 다루었고, 19세기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시기에는 다양한 계층과 배경의 사랑이 문학에 담겼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1856)은 지방 소시민 여성의 불륜과 좌절을 통해 낭만적 환상의 공허함과 봉건적인 사회 규범의 억압을 폭로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당시 여성의 사랑 추구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처벌받고 좌절되는지를 보여주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플로베르는 이 작품으로 풍속문란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세기 프랑스 문학은 한층 더 대담하고 심층적인 사랑 이야기들을 전개되었다.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와 1,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사랑은 개인 심리의 깊이와 사회·정치적 격변 속 인간성의 표출로 그려졌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에 걸쳐 집필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에서 사랑을 기억과 시간의 흐름 속에 해부하였고, 질투와 집착 같은 내밀한 감정을 귀족사회 붕괴의 배경과 함께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여성 작가들의 두드러진 활약이 나타났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은 여성의 시각에서 금기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랑을 묘사하여 전통적 성윤리와 가부장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뒤라스는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 『연인』(1984)에서 인종과 계급의 장벽을 넘은 파격적 사랑을 그렸고, 영화 시나리오 〈히로시마 내 사랑〉(1959)에서는 전쟁 트라우마 속에서도 싹트는 사랑과 기억을 실험적인 서사로 보여주었다. 프랑스 근현대 문학의 사랑 표현에는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열정과 함께 이를 둘러싼 사회적 통념에 대한 비판이 투영되어 있었다. 이는 비교적 일찍부터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와 성 해방의 흐름 속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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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의 사랑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의 사랑

 

프랑스 문학 작품에서의 사랑

마르셀 프루스트의 연작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스완의 사랑'(1913년)은 프루스트의 대작은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서 프랑스 문학의 심리적 분석 전통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예로 자주 언급된다. 그의 연작 소설의 가장 처음 1권에 해당하는 '스완의 사랑(Un amour de Swann)' 에피소드는 귀족 남성 스완이 평범한 처지의 여인 오데트에게 빠져드는 사랑의 심리를 면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스완이 처음에는 오데트를 자기 이상형이 아닌 여성으로 여겼으나 어느 순간 사랑에 눈멀어 그녀 없이는 못 사는 지경에 이르고, 나중에는 다시 사랑이 식어버린다는 역설적 과정이다. 이 흐름 속에서 프루스트는 사랑이란 환상과 집착의 산물임을 인물의 의식 흐름을 통해 해부한다.

그의 문장은 길고 만연체로, 하나의 마음속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수많은 메타포와 우회적 서술을 동원한다. 『스완의 사랑』의 진정한 묘미는 줄거리가 아니라 그 황홀할 만큼 강렬한 집중력, 그리고 스완의 의식 속에 완전히 몰입하는 전면적 체험에 있다. 그 장대한 독백을 통해 질투와 불안, 열렬한 동경에 사로잡힌 연인의 내면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프루스트는 음악, 미술 등의 이미지를 동원해 사랑의 감정을 묘사했는데, 이를테면 사랑을 음악에 비유하여 한 번 절정에 이르면 추락하여 중단되는 선율처럼 사랑도 절정과 권태의 반복을 가진다고도 썼다​. 이러한 심층 심리묘사와 의식의 흐름 기법은 프랑스 근대문학이 사랑을 표현하는 한 독보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다만 프루스트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종종 소유욕과 질투로 점철되어 있기도 한데, 실제로 프루스트 작품 속 주인공들은 사랑의 대상에 집착한 나머지 병적인 질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이 사랑을 통해 타인을 소유하고자 할 때 초래되는 고통을 낱낱이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프랑스 문학 전반에 흐르는 사랑과 질투 모티프의 정점을 이루기도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 (소설, 1984년)은 열다섯 프랑스인 소녀와 부유한 중국인 남성의 금지된 사랑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1930년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인종과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당대 사회규범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뒤라스는 이 파격적 서사를 매혹적이면서도 담담한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낸다. 어린 화자는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숨김없이 응시하며 이야기하지만, 그 어조는 때로 쓸쓸하고 건조하여 오히려 강렬한 여운이 담겨 있다.

작품 속에서 사랑은 달콤한 환상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가난과 인종차별, 가족의 붕괴 같은 현실이 사랑의 그림자로 드리우고, 결국 소녀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회고하는 서술자는 그때의 사랑이 자신을 만든 본질적인 경험이었음을 고백한다.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뒤라스 특유의 문체와 서사 실험이다. 그녀는 단편적이고 영화적인 장면 구성,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묘사, 과감한 시제 변화, 반복과 침묵을 통해 사랑의 기억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사랑의 행위를 묘사에 있어서 뒤라스는 솔직하고 관능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시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켜 결코 천박하거나 노골적이지 않게 담아낸다. 이러한 표현력 덕분에 두 연인의 육체적 교감마저도 하나의 아름다운 서정시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뒤라스의 《연인》과 같은 작품을 통해 프랑스 현대 문학은 사랑을 개인 해방의 경험으로, 그리고 사회적 억압에 대한 은밀한 저항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뒤라스 자신이 '사랑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 지루함까지 포함해 그것을 충만히 살아내야 한다'라고 말했듯, 그녀의 작품 속에는 사랑의 열락뿐 아니라 권태와 고통까지 포괄하여 가장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소설, 1856년)은 비록 19세기 작품이지만, 근대 프랑스 문학에서 사랑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가장 유명하게 그려낸 작품이므로 자주 언급되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지루한 결혼생활에 환멸을 느껴 소설에서 읽은 것 같은 열렬한 사랑을 꿈꾸며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그녀는 도시 청년과 지주의 아들에게 몸과 마음을 내어주지만, 결국 환멸과 빚더미만이 남게 된다.

플로베르는 이 비극을 통해 로맨스에 심취한 개인의 비극과 이를 조장한 당시 연애소설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엠마의 비극적 최후는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사랑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경고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프랑스 문학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사랑의 어두운 면모까지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사랑 담론을 성숙하게 발전시켜 왔다. 이 외에도 콜레트의 《셰리》 (1920)에서는 연상의 여성이 연하의 남성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통해 여성 욕망을 탐구하고 있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1954)에서는 십 대 소녀의 관능과 질투를 그리고 있어 그 문학적 성숙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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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직설적인 프랑스의 사랑 표현 방식
보다 직설적인 프랑스의 사랑 표현 방식

 

감정 표현 방식
내면적 고백 vs 외면적 열정

사랑의 감정 표현 방식에는 한국과 프랑스 문학의 문화적 기질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 문학이 상대적으로 내향적이고 함축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드러냈다면, 프랑스 문학은 보다 외향적이고 직설적인 열정으로 사랑을 표출하는 경향이 강했다.

먼저 한국 문학에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 사랑한다고 말하기보다 은근히 내비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직설적 감정 표현을 삼가는 미덕과도 관련이 깊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같은 작품에서는 두 남녀는 끝내 사랑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선물이나 표정 변화와 같은 다양한 복선으로 그 둘의 애정을 암시한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사랑손님과 어머니〉

 

 

고전시가나 근대시에서도 '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자연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일이 흔했다. 이러한 우회적인 표현은 오히려 인물의 내면 고백을 더욱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한국 문학에서는 편지나 일기, 독백 등의 형식을 빌어 사랑의 감정을 토로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근대기 잡지들에 연애편지 모범이 실리고, 서간체 연애소설이 유행했던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이런 간접 화법은 겉으로는 차분하고 절제되어 보이지만,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깊은 정한(情恨)과 애틋함이 흐르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한국 문학 속 연인은 불같은 열정보다는 한 방울 눈물에 담긴 사랑을 보여준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경향도 많이 변화했지만, 전통적인 한국 문학들에서 보여지는 사랑은 숨겨진 속마음의 표현에 익숙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해 프랑스 문학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전통이 강하다. 프랑스는 애초에 낭만주의 시대부터 격정적인 사랑(amour-passion)을 찬미해 왔고, 사회적으로도 연애와 에로스의 표현에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문학에서도 연인들이 서로에게 정열적인 언사를 내뱉거나, 연애편지 속에 온갖 수사적인 찬사를 쓰거나, 심지어는 신체적 사랑의 묘사까지 과감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뒤라스의 《연인》에서는 십 대 소녀와 애인의 육체관계가 노골적으로 그려지지만, 이러한 표현이 작품의 품위를 훼손하지 않고 사랑의 한 양상으로 예술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프랑스 문학에서는 대화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도 두드러진다. 연인들이 철학적인 담론을 나누며 사랑에 대해 논하거나, 격렬한 말다툼 끝에 격정적으로 화해하며 사랑을 확인하기도 한다. 한편, 프랑스의 시나 소설에는 관능적 이미지와 감각적 비유로 사랑을 묘사하는 부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불꽃, 포도주, 장미꽃, 광기 등 강렬한 상징들이 사랑의 열정을 표현하는데 동원되고, 이러한 직설적이고 극적인 표현은 사랑의 에너지와 위험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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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언어적·서사적 기법

사랑을 다루는 언어와 서사 기법에서도 흥미로운 대비를 보인다. 우선 언어 표현에 있어서, 한국어와 프랑스어의 특성이 사랑 표현에 다른 효과를 낳는다. 한국어는 주어를 생략하고 높임법을 쓰는 등 맥락중심적인 언어라서, 사랑 고백조차 직접적 어휘 없이도 가능하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또렷이 말하지 않고도 '당신 없이 못 살 것 같아요' 같은 우회적인 표현이나, 혹은 아예 아무 말 없이 행동과 은유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옛 편지글이나 문학작품을 보면 '그대 창가에 피는 꽃이 되고 싶다'처럼 비유적인 언어로 사랑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표현은 여운과 해석의 즐거움을 주는 장점과 함께 사랑의 감정을 마치 그림자처럼 은근히 드리운다. 또한 한국어 문장은 비교적 짧고 계층적 구조가 단순해서, 사랑의 애틋함을 간결한 시적 어조로 담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시인 김소월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라고 노래했을 때, 이는 평이한 언어로도 엄청난 희생적 사랑의 심정을 전달하는 한국어 특유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어는 주어와 시제가 분명하고 수사학적 전통이 강한 언어로서, 문장 구조가 복잡해도 논리의 흐름을 유지하기 쉽다. 프랑스 작가들은 긴 문장과 수식어, 그리고 치밀한 문법을 활용해 사랑의 감정을 세밀하게 풀어내곤 한다. 프루스트의 문장이 대표적이다. 한 문단에 달하는 길이로 연인의 미묘한 심경 변화를 포착하면서도 문법적으로 정확한 흐름을 이어간다​. 또한 프랑스어 어휘에는 사랑의 뉘앙스를 구분하는 단어들이 발달해 있더. amour, passion, adoration와 같이 작가들은 단어 선택만으로도 감정의 농도와 결을 세분화할 수 있다. 열정(passion)과 애정(affection), 욕망(désir)과 사랑(amour)의 차이를 의식하며 서술하고, 이를 인물 감정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작가 한강
작가 한강

 

 

서사 기법 측면에서 보면, 한국 문학은 전통적으로 현실감 있는 인물 관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 이야기를 전개해 왔다. 기-승-전-결의 구조 안에 인물 간의 갈등과 화해, 맺음과 헤어짐을 배치하는 다소 고전적 서사가 많았던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한국 작가들은 시점의 변화를 활용하여 사랑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1부는 남편의 시점, 2부는 형부의 시점, 3부는 언니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한 여성(영혜)을 둘러싼 세 시선이 교차함으로써 사랑의 부재와 왜곡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한국 소설에서는 회상 장면이나 삽입시(詩) 등을 통해 서정성을 부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러한 리얼리즘에 서정을 가미한 기법은 인물들을 현실적 존재로 느끼게 하면서도, 그들의 감정에는 시적인 깊이가 실리게 한다.

반대로 프랑스 문학에서는 20세기 들어 실험적 서사가 활발해졌다. 자유간접화법은 플로베르 이후로 프랑스 소설의 전형이 되었는데, 작가의 서술 속에 인물의 내면어가 녹아드는 기법을 통해 화자가 안내하는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자연스럽게 인물 내면의 독백을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의식의 흐름 기법, 과거와 현재를 뒤섞는 플래시백 같은 시간순서의 교란, 다중시점 등이 애용되어 사랑 이야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뒤라스의 《연인》 또한 시간대를 오가며 서술하고 1인칭과 3인칭(“그 소녀는…”) 시점이 교차하는데, 이는 사랑의 기억이 가진 불확정성과 아름다운 혼란을 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작가들은 또한 대담한 생략과 공백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 문장 안에서 갑자기 수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리거나, 중요한 대목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식이다. 이러한 기법은 때로 어려움을 주지만, 사랑의 복잡성과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부분을 형상화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요약하면, 한국 문학은 함축적 언어와 전통적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사랑의 감정을 잔잔히 스며들게 표현해 왔고, 프랑스 문학은 정교한 수사와 혁신적 서사 기법으로 사랑의 다면적 진실을 해부하고 재구성해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각각의 방식은 그 문화가 사랑을 통해 탐구해 온 인간 경험의 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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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에서의 사랑
프랑스 문학에서의 사랑

 

사랑과 관계의 표현

사랑 이야기에서 성 역할은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과 프랑스 문학은 이에 대해서도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한국 문학에서는 남성은 능동적 구애자, 여성은 수동적 피구애자의 모습이 두드러졌던 반면, 프랑스 문학은 비교적 일찍부터 여성 주체의 욕망과 남성의 연약한 모습을 묘사하는 데도 관심을 가져왔다. 한국의 경우,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여성의 정절과 희생이 미덕으로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관념은 문학에서도 여성 캐릭터들을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연인이나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그리게 했다.

《춘향전》과 같은 고전 서사에서 여성은 한 남자만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정절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근대 문학에 와서도 순수하고 희생적인 여성상이 반복되었다. 남성 주인공은 그런 여성을 보호하거나 때로 배신함으로써 갈등을 빚었고, 이야기는 여성의 눈물로 끝맺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전형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서서히 변모했으나, 사랑 앞에서 여성은 기다리고 남성은 선택한다는 근본적인 틀은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이미 김명순이나 나혜석 같은 여성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현대에 이르러 박완서, 공지영, 한강 등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시각에서 사랑과 삶을 재해석하면서 전통적 성 역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강의 작품들을 보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몸과 마음이 전면에 부각되고 남성들은 때로 이해자보다는 가해자로 그려지게 된다.

이러한 서사는 기존의 남녀 관계에 내재한 권력 불균형을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사랑의 의미를 다른 시각에서 보도록 만든다. 또한 남성 작가들 사이에서도 성 역할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 김수영은 시에서 아내를 현실적인 존재로 그리며 남성의 로망을 깨뜨렸고, 최인훈의 소설 등에서는 지식인 남성이 사랑 앞에서 무력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 문학은 전통적 성별 규범 속에서 사랑을 그리다가 점차 성 평등과 상호이해의 지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 문학에서는 상대적으로 일찍부터 여성의 적극성과 남성의 취약성이 묘사되곤 했다. 18세기 《위험한 관계》 같은 작품만 봐도 교활한 여성 캐릭터가 능동적으로 사랑의 게임을 주도한다. 19세기에도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는 연상 여성 마틸드가 청년 줄리앵을 유혹하는 등 전통적인 남녀 관계의 역학을 깨는 장면이 있었다.

20세기 들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여성 작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사랑을 서술하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했다. 뒤라스의 《연인》에서 소녀는 비록 연상의 남성에게 이끌리는 입장이지만,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삶을 스스로 정의해 나갔다. 그녀는 나이 많은 애인에게 종속된 피해자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쾌락과 사랑을 탐닉하고 그 기억을 붙들어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자가 된다.

 

 

팜므파탈
팜므파탈

 

 

또한 프랑스 문학에는 치명적인 여성, 팜므파탈(femme fatale) 캐릭터나, 반대로 순정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남성 캐릭터가 빈번히 등장해 왔다. 이러한 특징은 사랑의 역학에서 남녀의 고정된 위계를 흔드는 역할을 했다. 프루스트의 이야기에서 남성 화자는 연인 알베르틴을 극도로 통제하려 하지만 끝내 그녀를 잃고 절망하는 것처럼 남성의 질투와 집착, 여성의 탈주 모티프는 프랑스 문학의 사랑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랑을 권력 투쟁으로 그리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는 곧 성 역할이 사랑의 내용과 결말을 좌우하는 요소로 인식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프랑스 문학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죄악시하기보다는 인간적 현실로 그려내는 경향이 일찍부터 있었다. 콜레트의 소설들에서 나이 든 여성의 연애나 사춘기 소녀의 욕망이 솔직히 묘사되었고, 보부아르의 작품에서는 파트너를 대등하게 대하는 연인 관계를 실험적으로 그려냈다.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과 맞물려 더욱 강화되어, 현대 프랑스 문학에서는 성소수자의 사랑 이야기까지도 성 역할 고정관념을 넘어서 다루는 폭넓은 시각이 정착되었다. 결국 프랑스 문학 속 사랑의 성 역할 표현은 남녀 모두를 사랑의 주체이자 객체로 자유롭게 등장시키며, 그 사이의 권력관계와 심리전을 문학적 드라마로 승화시키는 데 오래전부터 능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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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문학과 프랑스 근현대 문학에서 사랑의 표현 방식은 이렇듯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감수성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문학의 사랑은 오랫동안 말하지 않은 채 흐르는 눈물이나 은유적 꽃송이로 상징되었고, 프랑스 문학의 사랑은 격정의 불길과 철학적 독백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작가는 침묵의 언어로 가슴을 울렸고, 프랑스의 작가는 직언의 미학으로 사랑의 빛과 그늘을 모두 드러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문학은 모두 사랑의 보편적 힘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난다. 어느 문화든 사랑 앞에서 인간은 때로 행복하고 때로 불행하며, 그 희로애락의 진실을 포착하고자 애쓴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한국의 독자가 프루스트의 문장에서 자기 자신의 애달픈 연정을 발견하고, 프랑스의 독자가 김춘수의 시구에서 보편적 인간 사랑의 진리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문학 속 사랑은 국경을 넘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결국 문학에 담긴 사랑은 각 사회의 거울이자 인간 마음의 거울로서, 표현 방식은 달라도 공명하는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두 문화의 걸작들이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언어로 쓰인 사랑의 이야기들이 서로를 비추어 줄 때 비로소 더욱 풍부한 이해와 감상을 누릴 수 있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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