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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문학

사랑, 상처, 그리고 이별의 용기를 그린 소설, 콜린 후버의 《우리가 끝이야》 줄거리 리뷰

by 장래희망 책방주인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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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끝이야(It Ends With Us)》, 콜린 후버

 

《우리가 끝이야(It Ends With Us)》를 펼쳤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 주인공의 자립과 성장, 그리고 마음을 치유해 주는 따뜻한 서사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흔한 로맨스의 공식을 조용히 뒤엎으며 신선한 물음을 던진다.

 

 

사랑이 삶에서 전부일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은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달콤하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일어나는 상처, 그 상처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끝을 내야만 하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 릴리 블룸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다. 새로운 도시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그녀에게 사랑은 마치 축복처럼 찾아오게 된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던 사랑은 점점 그녀를 과거의 그림자와 마주하게 만들고, 끝내는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만든다.

《우리가 끝이야》라는 제목은 세대를 이어 반복되던 고통의 고리를, 더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관계를 끝낸다는 선택. 이 소설은 그 순간의 복잡한 감정, 두려움과 후회, 분노와 해방의 감정을 고스란히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이번 리뷰는 줄거리를 중심으로 릴리가 겪는 갈등과 선택,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볼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따라가 보려 한다. 그녀의 선택과 용기를 통해 사랑과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콜린 후버, 《우리가 끝이야(It Ends With Us)》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삶

릴리 블룸은 오하이오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겉보기엔 평범했지만, 그 이면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폭력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다. 릴리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지역 정치인이었지만, 집 안에서는 엄마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릴리는 매번 숨죽여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고, 그 트라우마는 그녀 안에 깊게 각인되었다.

그런 가정을 떠나 릴리는 보스턴으로 이주한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녀는 죽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고요한 도시의 옥상 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본다. 그곳에서 한 남자, 라일 킨케이드와 마주친다. 신경외과 레지던트인 라일은 매력적이고 지적인 인물이다. 첫 만남은 예상치 못한 농담과 대화로 이어지고, 릴리는 그의 솔직함에 이끌리게 된다.

 

 

우리가 끝이야(It Ends With Us) 일러스트

 

 

한편, 릴리는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을 실행에 옮긴다. 바로, 보스턴 도심에 작은 플라워 샵을 여는 일이다. 꽃은 릴리에게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감정을 전하는 언어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꽃은 말하지 않아도 말해주는 존재야'라는 그녀의 신념은,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들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가게를 만들어간다.

라일과 릴리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에 빠르게 스며들며, 사랑은 모든 상처를 잊게 해 줄 것처럼 보인다. 릴리는 과거를 딛고 마침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운명은 언제나 가장 따뜻한 순간에 가장 차가운 현실을 끼워 넣는다.

라일은 분명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 속에는 폭력성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라는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릴리는 그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충격을 받지만,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워한다. 아버지와 닮아가는 라일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상처와 실수도 함께 감싸 안아야 하는 걸까?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보스턴에서의 삶은 새로운 시작이었지만, 그 시작은 과거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릴리는 꽃을 가꾸며 자신을 치유하려 했지만, 마주한 사랑은 또 다른 상처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 장면들은 릴리라는 인물의 입체성과, 그녀가 겪는 내적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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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끝이야(It Ends With Us) 일러스트

 

애틀라스와의 첫사랑

릴리가 보스턴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정리하지 못한 상자의 틈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속에는 십 대 시절 자신이 써 내려간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의 중심에는 애틀라스 코리라는 소년이 있다.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릴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인다.

애틀라스는 릴리의 어린 시절 유일한 위안이었다. 당시 그는 집을 잃고 버려진 집에서 지내던 노숙 청소년이었고, 릴리는 그런 그를 몰래 도와주며 조금씩 마음을 나누게 된다. 처음에는 따뜻한 음식과 담요 한 장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만남은 곧 두 사람만의 은밀하고 순수한 세계로 발전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에서 매일 상처받던 릴리에게, 애틀라스는 세상에 아직도 다정함과 연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It Ends With Us 일러스트

 

 

애틀라스 역시 릴리에게 마음을 열었고,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짧지만 깊은 첫사랑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을 오래도록 함께 있게 해주지 않았다. 어느 날, 애틀라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릴리 곁을 떠나게 되고, 릴리는 버려진 듯한 슬픔 속에서도 그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 이별은 그녀에게 첫 번째 ‘진짜 상실’을 가르쳐준다.

이 일기들은 릴리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겪는 감정의 핵심을 드러낸다. 릴리는 라일과 함께하는 현재에 안주하고 싶지만, 애틀라스를 떠올릴 때마다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고개를 든다. 애틀라스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릴리 내면의 도덕적 나침반 같은 존재다. 그는 그녀가 어릴 적 경험한 트라우마 속에서도 인간적인 따뜻함을 믿게 해 준 첫 사람이었고, 그것은 지금의 릴리에게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일기장을 다시 읽으며 릴리는 깨닫는다.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라일의 폭력적인 행동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그와 닮아가는 라일, 그리고 그와는 달랐던 애틀라스 사이에서 흔들린다.

 

 

It Ends With Us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It Ends With Us

 

완벽해 보였던 사랑, 라일의 두 얼굴

라일은 릴리의 삶에 처음 등장했을 때,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남자처럼 보였다. 유능한 신경외과 의사, 유머러스한 성격, 삶에 대한 열정과 진심 어린 관심. 릴리는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듯한 감정을 느꼈고, 마침내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지워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 믿음은 한순간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감정이 격해진 라일은 릴리를 밀쳐 바닥에 넘어뜨린다. 릴리는 충격에 휩싸이지만, 라일은 곧 무릎을 꿇고 울며 사과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감정 조절의 어려움, 자신도 두려웠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릴리는 혼란스러워진다. 그가 보여주는 사랑이 진짜라고 믿고 싶지만, 동시에 그 장면이 반복되던 부모님의 과거와 겹쳐진다.

“그는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말로 자신을 설득해보려 하지만, 릴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경고의 목소리가 울린다. 라일은 점점 더 자주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게 되고, 그 폭력은 단지 실수나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릴리는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야 하고, 무엇까지 용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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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로에서

릴리가 라일과의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있을 무렵, 오랜 시간 잊고 지내던 이름이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다. 애틀라스 코리. 십 대 시절, 릴리의 삶에 가장 깊이 스며들었던 첫사랑이자, 가장 순수한 연결을 느꼈던 유일한 사람. 그가 이제 성공한 셰프가 되어 보스턴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고, 릴리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그 순간, 릴리의 세계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애틀라스는 예전처럼 따뜻했고, 변하지 않은 눈빛으로 릴리를 바라본다. 과거의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릴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그녀는 여전히 라일과 결혼한 상태이며, 이제는 아이를 품고 있는 예비 엄마이기도 하다.

 

 

 

애틀라스는 릴리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지킬 수 있도록 조용히 곁에 머문다. 그것은 라일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이었다. 지배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그저 릴리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존재. 릴리는 점점 더 분명하게 느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의 내면은 복잡하다. 라일과의 관계 속에는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고, 그와의 아이는 그녀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연결 고리를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사이클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굳히기 시작한다. 자신의 엄마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서서히 깨우는 것이다.

애틀라스의 존재는 선택지이자, 거울이다. 그는 릴리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사랑의 원형'을 떠올리게 하고, 릴리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그는 릴리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그녀가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다시 찾도록 돕는 존재다.

 

 

 

 

릴리의 결단

릴리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왔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상처와 폭력도 감싸 안아야 할까?” 하지만 그녀가 아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 질문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그녀의 선택은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릴리는 더는 반복되어선 안 될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실감한다.

라일은 여전히 릴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릴리 또한 그 감정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알게 된다. 아무리 진심이 담긴 사랑이라 해도, 그것이 상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어릴 적 엄마가 겪었던 고통, 그리고 그걸 지켜보며 무력했던 자신의 기억은 이제 릴리 안에서 경고처럼 되살아난다.

릴리는 라일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우리 딸이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너는 뭐라고 하겠어?” 그 질문 앞에서 라일은 무너진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해왔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처음으로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릴리는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말한다.

 

 

 

 

 

여기서 끝내야 해.

 

그 말은 단순한 이별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릴리가 세상과, 가정과,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선언이다. 폭력이 반복되는 세습을, 관계 안에서 침묵하고 감내하기만 했던 역할을, 이제는 자신이 끊어야 한다는 결단이다. 릴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딸이나, 누군가의 연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지키기로 한다.

이 결단은 슬프고도 위대하다. 그녀는 여전히 라일을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이 누군가를 파괴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믿었던 과거에서, 릴리는 이제 사랑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은 후, 릴리는 애틀라스를 찾아가 조용히 말한다. “그와의 사이를 끝내기로 했어.” 그 말에는 눈물도, 미련도, 자책도 담겨 있지 않다. 오직 책임과 결심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이제 과거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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