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독후감/문학

이야기 속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소설,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 줄거리 및 리뷰

by 장래희망 책방주인 2025. 5. 23.
728x90
반응형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눈먼 암살자》는 이야기 안의 또 다른 이야기,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이야기. 이 소설은 한 여성의 회고록이자, 한 가문의 몰락기이며, 동시에 사랑, 배신, 권력, 침묵의 기록한 소설 같은 느낌이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 진실을 쓸 권리를 가졌는가?”

마치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은 소설은, 다중 구조와 시간의 교차, 그리고 환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내면서 진실을 쫓게 만든다.

 

 

 

《눈먼 암살자》 이야기 구조
《눈먼 암살자》 이야기 구조

 

 

1. 소설의 시작

소설의 화자는 아이리스 체이스(Iris Chase)라는 노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20세기 초반, 캐나다 온타리오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언니인 로라 체이스(Laura Chase)의 비극적인 자살 이후 가문의 몰락과 개인적인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이야기는 아이리스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쓰는 회고록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병든 몸으로 외딸을 위해 요양원에서 글을 쓰며, 과거의 진실을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아이리스의 시점은 노년의 체념과 회한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한 세기를 통과해 온 여성이 겪은 사랑, 억압, 침묵, 그리고 저항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녀가 고백하려는 진실은, 그저 가족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누가 이야기할 권리를 갖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반응형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
소설 속의 소설, 《눈먼 암살자》

 

2. 소설 속의 소설 《눈먼 암살자》

이 소설의 제목인 《눈먼 암살자》는 이야기 속 이야기, 즉 로라 체이스가 자살 전에 발표한 단 하나의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아이리스의 회고록 사이사이에 이 소설의 일부가 삽입되며, 두 개의 전혀 다른 세계를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로라의 소설은 현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미래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 속에는, 지하조직에 쫓기는 남성과 정체불명의 여성 사이의 은밀한 만남이 반복된다. 남자는 그녀에게 외계 행성의 피난처에서 벌어지는 ‘눈먼 암살자’의 모험담을 들려준다. 환상적인 이야기와 에로틱한 분위기, 정치적 상징이 뒤섞인 이 작품은, 처음엔 단지 문학적 장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점차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 속 이야기’는 은유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로라의 것이 아니라 아이리스가 쓴 것이라는 결정적인 진실이 드러나면서, 전체 구조는 전복된다.

 

 

3. 두 자매, 그리고 잔혹한 세계

아이리스와 로라는 상반된 자매다. 로라는 순수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반면 아이리스는 언니로서 책임감을 짊어지고, 사회와 가족, 남성 권력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삶에 결정적인 인물은 알렉스 토마스(Alex Thomas)라는 정치적 망명자다. 두 자매 모두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로라는 그 관계로 인해 파멸하고 만다. 아이리스는 권력과 명예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강제로 부유한 산업가 리처드 그리펜(Richard Griffen)과 결혼하게 된다. 리처드는 냉혹하고 폭력적인 남성으로, 로라에게도 결정적인 상처를 남긴다.

결국 로라는 자살하고, 아이리스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모든 진실을 밝힐 결심을 한다. 그녀는 로라의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 《눈먼 암살자》의 진짜 작가가 자신이며, 로라가 아닌 자신이 그 사랑을 경험했음을 밝힌다.

이 고백은 단순한 자서전적 회고가 아니다. 여성으로서 침묵을 강요당한 존재가, 늦은 나이에야 비로소 자신이 ‘이야기할 권리’를 되찾는 상징적인 행위다.

 

 

 

반응형

 

 

2000년 부커상 수살작 《눈먼 암살자》
2000년 부커상 수살작 《눈먼 암살자》

 

4. 진실을 감추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로 말하는 진실

이 소설의 진정한 힘은 이야기의 구조에 있다. 애트우드는 하나의 중심 서사를 곧장 서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 사이에 또 다른 이야기를 숨기고, 그 틈으로 진실을 배치한다.

처음엔 누구의 시점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로라의 소설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알렉스는 실재 인물인가? 아이리스는 왜 늦은 나이에야 이 모든 것을 말하는가?

하지만 점차 깨닫게 된다. 《눈먼 암살자》라는 허구 속 허구가, 아이리스가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낸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그녀는 진실을 직접 말할 수 없었기에, ‘이야기’라는 틀 안에 자신의 경험을 숨겼던 것이다. 이 장치는 단지 문학적 기교가 아니라, 여성 서사의 정치적 선언처럼 느껴진다.

 

 

한 줄기 이야기로 세상을 꿰뚫다

소설은 무척이나 복잡한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 복잡함에 압도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 구조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이야기의 시점은 세 갈래다, 아이리스의 회고록, 로라의 소설 《눈먼 암살자》. 신문기사 등의 외부 자료. 이 각각의 목소리가 서로를 어떻게 보완하고 반박하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 재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의 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소설은 누가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이다. 침묵을 강요당한 여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글로, 상상으로, 이야기로 살아남는지를 생각하며 읽으면 감동의 깊이가 달라진다.

필요하다면, 읽을 때 메모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처음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인물 관계와 시점의 혼동을 줄이기 위해, 등장인물, 사건 연표 등을 간단히 정리해 가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을 것을 추천한다. 서사의 층위가 많기 때문에, 빨리 읽기보다는 매 장면의 의미를 곱씹으며 천천히 읽는 것이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눈먼 암살자》는 단지 한 여성의 회고록 이상으로 한 세기의 억압과 침묵을 통과해 온 여성의 이야기할 권리에 대한 선언이라고 평가 받기도 한다. 소설은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이 얼마나 복잡하고 교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는 말년에 이르러 비로소 진실을 쓴다. 사랑, 상실, 배신, 억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딘 시간. 그녀의 말은 조용하지만, 그 침묵의 무게는 누구보다 크다.

《눈먼 암살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진실을 감추는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자는, 결국 살아남은 자라고.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