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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문학

볼테르와 계몽주의 시대 문학, "캉디드(Candide)" 리뷰

by suis libris 202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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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는 이성의 시대였다. 계몽주의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는 과학 혁명의 영향으로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가 중시되었고, 종교적 권위와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날카로운 지성과 풍자적인 문체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하며 계몽주의 사상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의 《캉디드》

 

본명이 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çois-Marie Arouet)인 볼테르는 뛰어난 재치와 비판 정신으로 인해 여러 차례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거나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종교적 독단, 정치적 억압,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 싸우며 인간의 이성과 자유, 관용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희곡, 시, 철학 서적, 역사 서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표출되었는데, 특히 풍자 소설에서 두드러진 면모를 보였다.

그의 작품 캉디드》의 원제는 ,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Candide, ou l'Optimisme)이다. 1759년에 익명으로 출판된 볼테르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당시 철학계의 주요 논쟁거리였던 낙관주의, 특히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이 세상은 가능한 모든 세상 중에서 최선이다”라는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볼테르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과 같은 끔찍한 재난을 목격한 볼테르는 세상의 고통과 악의 존재를 외면하는 낙관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캉디드"를 통해 이러한 낙관주의의 허점을 폭로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와 현실적인 삶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소설의 주인공 캉디드는 베스트팔렌의 한 성에서 팡글로스 선생에게 “모든 것은 최선이다(Tout est pour le mieux dans le meilleur des mondes possibles)”라는 낙관주의 철학을 배우며 자라난다. 하지만 그는 성에서 쫓겨난 후 전쟁, 지진, 강도, 질병 등 온갖 불행과 고난을 겪으며 세상의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캉디드는 이러한 여정을 통해 스승의 가르침과는 달리 세상에는 고통과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소설은 이어진다.

소설은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낙관주의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사회의 부패와 모순, 종교적 광신, 정치적 억압 등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엘도라도라는 이상향을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제시한다. 결국, 캉디드는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Il faut cultiver notre jardin)”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줄거리 요약

 

 

볼테르의 《캉디드》, 클래식 에디션, 프랑스어

 

캉디드의 여정은 순진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의 여정을 주요 사건별로 나누어 분석해 보면 아래처럼 정리할 수 있다.

 

1. 베스트팔렌에서의 생활과 추방

캉디드는 베스트팔렌의 툰더-텐-트롱크 남작의 성에서 자라며, 가정교사 팡글로스 선생으로부터 “모든 것은 이 세상에서 가능한 최선이다”라는 낙관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는 남작의 딸 퀴네공드를 사랑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지만, 퀴네공드와의 키스 사건으로 인해 성에서 쫓겨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여정이 시작된다. 베스트팔렌에서의 삶은 캉디드가 세상의 어두운 면을 경험하기 이전의 순수했던 시절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낙원과 같았던 곳에서의 추방은 그가 현실 세계의 고통과 마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2. 전쟁과 지진을 겪으면서 대면한 세상의 부조리함

캉디드는 불가리아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어 잔혹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더욱이 리스본 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겪으며 세상의 무자비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종교 재판, 노예 제도, 강도 등 인간의 악행과 사회의 부조리를 경험하면서 스승 팡글로스의 가르침과는 달리 세상에는 고통과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낙관주의의 허점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모든 것이 최선"이라는 팡글로스의 주장은 전쟁의 참혹함, 자연재해의 무자비함 앞에서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캉디드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세상이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고통과 불행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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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상적인 삶과 깨달음

캉디드는 엘도라도라는 전설의 나라에 도착하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평등하며 종교적 갈등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퀴네공드를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엘도라도를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엘도라도는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유토피아임을 암시한다. 캉디드가 엘도라도에 머무르지 않고 떠나는 것은 그가 이상적인 세계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엘도라도에서의 경험은 캉디드에게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전부가 아니며,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4.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결말

기나긴 여정 끝에 캉디드는 퀴네공드, 팡글로스, 마르탱 등과 함께 작은 농장을 일구며 살아가게 된다. 그는 과거의 고난과 스승의 철학을 회상하며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Il faut cultiver notre jardin)”고 말한다. 이는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거나 추상적인 철학 논쟁에 매달리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것'은 문자 그대로 농사를 짓는 행위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캉디드는 과거의 고난을 통해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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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메시지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삶의 의미

 

캉디드는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대욱 유명하다. 특히, 당시 유럽 지성계를 지배했던 낙관주의 철학을 비판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핵심 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품은 독일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 특히 그의 저서 "모나드론(Monadologie)"에서 주장된 "이 세상은 가능한 모든 세상 중에서 최선이다(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라이프니츠는 신이 완벽하기 때문에 그가 창조한 세상 또한 가능한 한 최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은 더 큰 선을 위한 불가피한 부분이며,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볼테르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낙관주의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캉디드가 겪는 일련의 불행들, 즉 전쟁의 참혹함,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인간의 잔혹한 행위들은 "모든 것이 최선"이라는 명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리스본 대지진은 볼테르가 낙관주의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이는 작품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 앞에서 "이 세상은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와 다름없었던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팡글로스 선생은 이러한 낙관주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인물로 등장하여 볼테르의 비판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그는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은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것"이라고 되뇌며 현실을 합리화하려 한다. 이러한 팡글로스의 모습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추상적인 이론에만 매몰된 낙관주의의 허점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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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를 표현한 일러스트

 

 

작품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전쟁, 질병, 자연재해, 인간의 잔혹함 등 다양한 형태의 고통이 작품 전반에 걸쳐 묘사되고 있다. 볼테르는 이러한 고통들을 통해 신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정당화하는 낙관주의의 논리를 비판한다. 동시에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근거하여 현실을 직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캉디드가 겪는 고난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에 그치지 않고, 당시 유럽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반영하고 있다. 종교 재판, 노예 제도, 귀족들의 부패 등은 볼테르가 비판하고자 했던 사회 문제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도록 말하고 있는 것이다.

캉디드는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삶의 자세와 실용적인 지혜를 강조한다. 기나긴 여정 끝에 캉디드는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Il faut cultiver notre jardin)”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문장은 작품의 핵심 주제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장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현실에 충실한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거나 추상적인 철학 논쟁에 매달리기보다는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자기 계발과 노력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삶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외부의 힘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노력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캉디드는 농장을 함께 일구는 사람들, 즉 퀴네공드, 팡글로스, 마르탱 등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유대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캉디드"는 추상적인 이론이나 이상향을 쫓기보다는 현실에 뿌리내리고, 자신의 능력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자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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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25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 볼테르의 《캉디드》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과 의미를 전달한다.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도 깊은 연관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자세와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캉디드 일러스트

 

작품은 맹목적인 낙관주의와 현실 도피는 경계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근거 없는 낙관주의나 긍정 심리가 만연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만 강조하거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일시적인 위안에만 집중하는 것은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되뇌었던 팡글로스의 모습과 유사하게 보인다. 작품은 이러한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현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경쟁과 물질만능주의는 경계 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과 성장을 추구하며, 물질적인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엘도라도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경험했지만 결국 그곳을 떠났던 캉디드의 모습은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지게 된다. 작품은 물질적인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작품 에서 묘사된 전쟁, 질병, 착취 등 사회적 부조리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빈부 격차, 환경 문제, 인종 차별 등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고, 작품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가짜 뉴스와 정보 과잉된 시대,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을 너무나도 흔하게 목격하고 있다. 팡글로스의 맹목적인 가르침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캉디드의 모습은 정보의 진위를 분별하지 못하고 쉽게 현혹되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작품은 이러한 모순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겸비하고 정보를 분별할 수 있는 깨어있는 개인이 될 것을 강조한다. 즉,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세우고, 정보를 받아들이고 과정에 대한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자신의 정원'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가꾸고 있습니까? 《캉디드》는 우리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만든다. 그러한 의미에서 단순히 읽고 잊어버리는 고전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침서와도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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