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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문학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 소개

by suis libris 202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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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 오픈하우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 오픈하우스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 속 부품처럼, 언제 대체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곤 한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The Ax》는 바로 이러한 현대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회사에서 수십 년간 자신의 모든 걸 바친 결과가 하루아침에 맞게 되는 해고라면 어떨까? 평생 쌓아온 경력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생계를 유지할 방법조차 막막해진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떨어져야 하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소설은 이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고도 섬뜩하게 그려내면서 묵직한 충격을 선사한다. 과연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보게 될까? 도끼날 아래 놓인 것은 비단 주인공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액스》 작품 소개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는 미국을 대표하는 범죄·추리 소설 작가 중 한 명이다. 풍자와 블랙 유머가 가미된 특유의 문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본명 외에도 여러 필명을 사용해 다양한 장르와 분위기의 작품을 발표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리처드 스타크(Richard Stark)’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하드보일드 범죄물 시리즈인 〈파커Parker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 미스터리 작가 협회(Mystery Writers of America)로부터 그랜드 마스터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현대 범죄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의 작품 《액스》는 화려한 그의 커리어의 정점에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버크 드보어가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된 후,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마 상상조차 못 할 극단적 계획을 세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끔찍한 스토리를 다루지만 코믹하게 느껴지는 장면을 뒤틀린 블랙 유머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이러한 풍자적인 코미디는 사회 구조의 부조리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드러내고 절박함에 몰린 인간 심리를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출간 당시 미국 사회는 고용 불안과 실업 문제가 중요 이슈였던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와 맞물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심리적 압박과 그로 인한 도덕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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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줄거리 

 

영화 『액스』

 

소설은 실직한 가장이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극단적 발상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버크 드보어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제지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는 나이와 경력 때문에 새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책임감과 무력감이 동시에 그를 짓누르는 상황이다.

계속된 구직 실패와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던 버크는 새롭게 지원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경쟁자들로 예상되는 후보자들을 미리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우선 자리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 목록을 뽑아내고, 이들을 하나씩 찾아내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그 자리를 독식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에 착수하게 된다.

경쟁자 명단을 추적하던 버크는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는 예상치 못한 공포와 불안, 그리고 일말의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는 뒤돌아설 수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그는 재취업이라는 그만의 목표를 위해 다시금 계획을 밀어붙이기로 마음먹는다.

 

 

계속되는 범죄
숨 막히는 이중생활

 

 

범행이 거듭될수록 버크는 치밀하게 증거를 없애기 시작한다.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교묘하게 행동하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한편 경찰이 비슷한 수법의 연쇄살인을 수사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버크가 어떤 식으로 발각될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버크는 오랜 노력 끝에 목표했던 회사를 비롯해 원하는 취업 기회를 얻기 위해 마지막 단계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한 개인이 과연 어디까지 도덕적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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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영화 『액스』

 

 

하루아침에 해고된 후 느끼는 무력감, 분노, 상실감은 누군가의 과거이고, 현재이고, 또 미래이다. 오늘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고용 불안과 구조조정이라는 모티브는 그 자체로도 소름이 돋는다. 치열한 경쟁 체제에서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넘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대기업·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구조조정과 대규모 해고가 이어지는 시대적 상황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한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조직이나 경제 체제의 변화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나 역시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주인공은 실직과 구직 실패가 거듭되면서 점차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된다. 빠져나갈 수 없는 압박감과 불안감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극단적 발상을 실행하게 만든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속답처럼, 원래는 평범했던 한 인간이 어떻게 선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살인이라는 극한 행위에까지 이르게 되는지, 그 심리적 파탄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리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경쟁 속에서 윤리와 생존이 충돌하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우리는 극한 상황에서 어디까지 도덕적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경고한다.

 

 

신 자유주의는 패배했는가?

 

작품은 끔찍한 사건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낳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개인을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약화시키고, 그 희생양은 언제나 개인이 짊어지게 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빈부 격차 심화, 고용 불안정, 사회 공동체 해체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했다. 작품은 이러한 이러한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해석된다. 이러한 테마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비극적인 선택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낯낯이 파헤치고, 더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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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떡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과거에 읽었던 《9번의 일》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표독해지고 악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표독함을 뛰어넘는다. 주인공의 선택은 이러한 범죄 장르에 익숙했다 생각했던 나에게조차 불편함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줄 만큼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이었다. 평범한 중년 가장이 구직 실패와 사회적 압박 끝에 극단적 범죄로 치달아 가는 과정을 밀도 높게 그려냄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구든 내몰릴 수 있는 ‘불안’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비틀린 방식으로나마 “살아남고자” 애쓸 뿐이라는 사실이 제일 섬뜩했다. 그 모습이 기괴하고 잔혹해 보이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떡했을까?”라는 불편한 질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극명하다. 극한의 경쟁과 고용 불안이 한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잔혹한 범죄 묘사에만 집중한 자극적 소설이 아니라, 그 뒤에 도사린 사회적·심리적 함의를 진득하게 곱씹게 만든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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