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TV를 보지 않는다고 난리다.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TV 시청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뚜렷한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TV를 안 본다고 위기라 말한다. TV를 보든 안 보든 뭐 그리 크게 대수겠냐마는 TV 시청 시간 감소에 따른 지상파나 방송 3사의 광고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위기라고 떠들어대는 듯싶다. 광고 시장 판도의 변화는 제법 오래된 일이다. 전통적인 대중매체에 지출하는 마케팅 비용은 지속해서 줄어들었고, 모바일과 웹 환경에 지출하는 비용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벌써 몇 년 전에 모바일 광고 시장이 TV 광고 시장의 규모를 넘어섰고, 그에 따른 마케팅 환경도 급변했다.
제품의 장점들만 나열해 놓은 전통적인 상품 광고는 이제는 소비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대량으로 찍어내듯 나오는 제품은 더 이상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지 못한다. 오히려 나심비나 레트로 혹은 뉴트로 같은 제품과는 무관한 스토리가 상품 판매의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상품 자체보다 스토리가 중요해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스토리텔링 대가 로버트 맥키Robert McKee의 스토리텔링을 통한 광고 마케팅 혁명을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면 《스토리노믹스》는 변화한 시대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혹은 일명 사람들에게 먹히는 이야기를 작성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지금까지 약 4만 명이 넘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 제작자, 소설가, 희곡 작가, 배우, 감독들이 그의 시나리오 작법에 관한 수업을 듣고, 〈반지의 제왕〉, 〈뷰티풀 마인드〉, 〈포레스트 검프〉, 〈슈렉〉, 〈프렌즈〉 같은 작품을 썼다고 하니, 시대 변화에 따라 작법에 대한 통찰은 대중들에게 잘 먹혔던 것 같다.
스토리 설계는 총 8개 단계로 이루어진다. 유의미한 정서적 효과 > 균형 > 불균형 > 욕구 > 전술적 선택 > 기대의 위반 > 통찰 > 종결의 순서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머니볼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영화 줄거리에서 보여주는 클리셰 같은 공식과도 얼핏 보면 비슷하다. 비슷한 틀의 영화들을 수도 없이 보지만 그 틀에 박힌 클리셰는 가장 진부하면서 가장 강력하다.
※ 스토리 설계의 8단계
1단계: 타깃 관객 - 유의미한 정서적 효과
2단계: 소재 - 삶은 핵심 가치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함
3단계: 도발적 사건 - 삶의 핵심 가치의 균형을 깨뜨리는 사건
4단계: 욕망의 대상 - 충족되지 않은 욕망의 대상이 필요
5단계: 첫 번째 행동 -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중심인물의 행동
6단계: 첫 번째 반응 - 중심인물의 기대를 덜컥 위반하여 주인공과 목표 사이의 거리를 벌려 놓기
7단계: 위기의 선택 - 첫 번째 위기에서 얻은 교훈(통찰)을 바탕으로 두 번째 행동을 선택
8단계: 절정의 반응 - 두 번째 행동이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절정의 반응을 끌어내고 그 결과 주인공이 욕망의 대상을 손에 넣고 삶은 균형을 되찾고 스토리를 마침
광고와 마케팅의 성공 사례에 대한 예시들도 여럿 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도브Dove의 리얼 뷰티Real Beauty Sketches 캠페인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2013년에 Dove에서 진행했던 캠페인으로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습니다You’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라는 표제어답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인상적인 광고이다. 광고에는 몽타주를 그리는 포렌식 아티스트가 커튼 뒤에서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설명만으로 두 개의 몽타주를 그린다. 한 번은 자신을 스스로를 묘사한 설명을 기반으로, 그리고 또 다른 한 번은 타인이 나를 묘사한 내용을 기반으로 몽타주는 그려진다. 그렇게 같은 인물을 두 번 그린 몽타주가 완성되었다. 자신의 몽타주를 보는 순간 제법 다른 몽타주에 당사자들은 놀라워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자신을 것과는 제법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떤 몽타주가 더 아름답게 그려졌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신을 묘사한 것보다, 타인이 나를 묘사한 몽타주가 훨씬 아름답게 그려졌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상품 마케팅이나 성공 스토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예전처럼 예쁘거나 멋있어서, 노래를 잘해서, 음식이 맛있어서, 품질이 좋아서로 설명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임블리의 쇼핑몰도 그렇고, 텀블벅의 달빛 천사 OST 앨범 크라우드펀딩, 포방터 돈가스, 양준일의 재조명은 인물이나 상품, 제품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스토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동경하는 삶의 모습을 쇼핑에 투영하고, 나만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추억 속 앨범을 갖고 싶어 하고, 마음에 와 닿는 인생 스토리가 녹아 있는 곳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인다.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넓고, 더 많은 용량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듯싶다.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경험하고 싶도록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시련을 겪어야 하고, 영웅담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책의 내용처럼 브랜딩도, 광고도, 마케팅도, 소비도 모두 스토리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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