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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자기계발서

'커밍 업 쇼트' 책리뷰,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by suis libris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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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 18세가 되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독립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거나,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경제적/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면, 혹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스스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느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쏠림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그 결과 소외 계층이 생기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더 나아가 기본적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생활조차 누리지 못하는 불평등을 낳는다. 이런 사회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알지만 자율적인 선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시련, 어려움, 가난 모두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치부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던지, 시험을 잘 보던지, 사회에서 필요한 기술을 배우던지... 어떻게든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일정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 기준이 누가 어떻게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세워졌는지도 모른 채.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전통적인 사회적 기대만을 어울릴 수 있는 요구하고 따를 것을 요구하는 이들, 그리고 그 기대를 잘 따르는 이들에게 '지금 겪는 시련은 모두 당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이니, 온전히 당신이 책임을 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만 말할 수도 없지만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도 지나치게 불공평하다.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이 처한 상황과 상실감을 이야기한 책 힌 권이 있다.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이들의 개인적인 잘못 때문도, 가족의 문제 때문도 아니다. 이들의 경험하는 좌절과 절망의 근원에는 ‘제도‘가 있다. 사회 제도가 이들로 하여금 각자의 세계에 갇혀 서로 연대할 희망을 품지 못하도록 내몰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무력감이 청년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책, 《커밍 업 쇼트》는 오늘날 노동 계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실태를 기술하고 있다.

 

 

 

제니퍼 M. 실바Jennifer M. Silva

 

 

책의 저자 제니퍼 M. 실바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정치 문화, 사회 계급, 불평등의 사회 현상을 주리 연구하고 있다. 《커밍 업 쇼트》는 미국 청년 100명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저술된 책으로 2013년에 출간되었다.

 

책인 출간된 지 벌써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연구 배경은 2010년 초를 기점으로 하고 있지만 그 당시 미국과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문제는 공통점들이 많다. 더구나 청년 문제의 경우에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88만 원 세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때가 2007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때의 청년들과 2021년 청년들이 겪어내야 하는 시련의 종류의 정도는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절규를 듣는 우리들도 만성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의 배부른 고민 정도로 치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성장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겪어내야 하는 숙명처럼 그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 결과 세대 간 불평등은 더욱 커졌고,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미래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자녀를 키울 수도, 그렇다고 마음껏 연애를 할 수 있는 현실적 상황이 안되니,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아는 친구들, 후배들, 동료들의 고민이 책에서 소개된 과거 미국 청년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스물여섯 살 백인 남성 롭의 사례를 보자. 나는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주말 훈련장에서 조사를 진행하던 중에 그를 만났다. 그의 첫 일자리는 어머니도 일했던 한 제지 회사 공장이었다. 이 회사는 공장을 폐쇄하고 낮은 생산비를 찾아 해외로 이전했다. 직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금속 전공을 살려 기계공으로 경력을 쌓기로 마음먹었다. "목재와 금속을 가지고 일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제조 기술이나 금속을 가지고 일하는 거, 이런 걸 무척 좋아했죠."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동 시장에 진입하고자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롭은 자신이 익힌 기술이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

 

"저는 학교에서 수공업 공구로 배운 마지막 세대예요.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 수치 제어CNC 기계 프로그램을 써요. 컴퓨터로 부품을 그리고 기계에 연결하면 기계가 잘라내는 거죠... 저는 이 기술을 배운 적이 없어요. 학교에서 저 프로그램을 들이기 전 세대거든요. 그리고 CNC를 쓸 줄 모르면서 기계공으로 일자리를 구하려면 5년 정도는 경력이 있어야 돼요. 제 기술은 아무 쓸모도 없는 셈이죠."

 

 

 

 

학교에서 두꺼운 전공 책에 코를 박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학교에서 배운 이론들이 직장을 구하는데, 혹은 현업에서 일을 하는데 전혀 쓸모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지원 회사마다 원하는 기술이나 지식을 별도로 학습해야 하고, 요건에 맞는 영어 성적, 자격증, 수료증, 관련 활동 경력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운이 좋게 회사에 입사했다 하더라도 회사 시스템 속에서 그 나름의 방법을 다시 익혀야 한다. 어느 기업의 경우에는 신입 사원 교육만 몇 개월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실무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재교육을 한다.

 

전통적인 학교 교육 시스템에만 충실했다면 이 과정을 유연하게 준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하는 경쟁을 한다면 그 경쟁이 과연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성인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노동 시장에 대한 문제, 교육과 현실의 괴리,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 가족 간의 갈등 등 다양한 난관을 이겨내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럼 어쩌란 말이야? 더 좋은 대안이라도 있는 거야?'라는 반문을 자주 듣는다. 사실 대다수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대안이나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밍 업 쇼트》는 현재 청년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한 그들의 선택, 사랑, 결혼, 가족의 문제, 인종, 차별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 감정적 결핍 등 그들의 겪어내야 하는 현실의 무게를 잘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문구는 경험이 심원하게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본성을 지님을 드러내려는 것이지 끝없는 개인 서사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다. 구조적 불평등을 집단적으로 자각하지 못한다면 탈산업화, 불평등, 리스크가 초래한 고통과 배신을 개인의 실패로 해석하게 될 뿐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가족 성원은 무가치한 개인으로 간주되고 이들이 겪는 중독과 질환은 사적인 악행으로 치부된다. 궁극적으로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가족이 과거가 두드러지면서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시장이 현재 행사하는 형성력을 가려 버리게 된다. 오늘날의 노동 계급 청년 세대는 안전한 미래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사회적 힘에서 시선을 돌리고 있으며, 성공의 책임이 오직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의 성인기를 영구적인 수준 미달로 경험하지만, 그 탓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커밍 업 쇼트coming up short, 열심히 노력했으니 못 미친 상태,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 이미 짜인 틀 안에서 도태된 이들. 그들이 굳이 청년이 아니어도, 불확실한 시대를 겪어내야 하는 이들은 비슷한 시련과 상실감, 고립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무한의 경쟁 속으로 막 뛰어들어야 하는 이들에게 만인에게 공평한 제도적 개선이 아니더라도 작은 관심과 그들이 겪는 시련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선순환의 첫 고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이들의 개인적인 잘못 때문도, 가족의 문제 때문도 아니다. 이들의 경험하는 좌절과 절망의 근원에는 ‘제도‘가 있다. 사회 제도가 이들로 하여금 각자의 세계에 갇혀 서로 연대할 희망을 품지 못하도록 내몰고 있다. 그렇기게 이들의 무력감이 청년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도 하다. 지은이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때 노동 계급 청년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변화를 위한 ‘연대‘의 계기는 이해에 있으며, 추상적인 표상 뒤에 감춰진 현실을 직시할 때 연대를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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