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떡하면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이제 곧 있으면 삶의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에 돌입하지만, 아직도 가끔은 ‘내가 지금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 건가?’하는 의문과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낀다. 또래들은 가장이고, 이미 대부분 아버지가 되었고, SNS에서 추천해주는 친구들은 더 이상 철없이 방황하는 철부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성장 소설은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고, 시련을 겪고, 어린 주인공은 방황하고 흔들린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시련의 크기는 무척이나 크고 거대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전보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성숙하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일부 소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나치게 비참하거나 열악한 환경 속으로 주인공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그 난관을 얼마나 잘 이겨내는지 지켜본다. 끝없이 추락하고 파멸에 이르기도 하지만, 파멸에는 성장이 없다. 그냥 그렇게 부서져 버리고는 이야기는 끝난다. 소설, 특히 성장 소설을 읽다 보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기 위한 장치들 때문에, 과한 감정을 소모한다. 그렇게 감정을 다 써버리고 나면 당분간 소설과 거리를 두게 된다.
나의 10대를 돌이켜보면 소설처럼 비참하지 않았다. 극적이지도 않았고,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감정 변화나 끝을 모르는 방황도 없었다. 단지 지금보다 조금 더 충동적이었고, 반항적이었고, 호기심이 왕성했다. 아직 몰랐기에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았다.
지극히 평범했던(?) 나의 사춘기를 떠올릴 만큼 공감 가는 성장 소설 한 편을 발견했다.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의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10대 소녀의 성장을 담고 있다. 나는 소설 속 소녀처럼 모험적이지도 않았고 용기도 없었지만, 비슷하게 느끼고 보았다.
《나폴리 4부작》으로 유명한 엘레나 페란테는 작품 외적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성별조차 알려지지 않은 작가는 이름조차 필명이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은 한번 쓰이면 작가는 필요하지 않다books, once they are written, have no need of their authors.”고 말할 정도로 미디어와의 접촉을 극히 꺼리는 페란테는 오직 이메일이나 서면 인터뷰만을 진행한다. 그/그녀의 집필에서 익명성은 작품 활동의 전제 조건이라고 누차 말해왔다.
완성된 책은 내가 없이도 세상에서 자기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사실과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주인 행세를 하며 작품들 옆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글쓰기에 대해 새로운 무언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이 언어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Once I knew that the completed book would make its way in the world without me, once I knew that nothing of the concrete, physical me would ever appear beside the volume—as if the book were a little dog and I were its master—it made me see something new about writing. I felt as though I had released the words from myself.
2015년 잡지 「파리 평론The Paris Review」의 인터뷰 중에서…
평범한 가정의 조반나는 어느 날 자신이 고모 빅토리아를 닮았다는 부모님의 대화를 듣게 된다. 남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대화겠지만 그녀의 가족에게 빅토리아 고모는 추함과 사악한 존재로 통했다. 조반나의 가족은 친가 쪽과는 오래도록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고모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가는 어느 날 조반나는 호기심에 빅토리아 고모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모님께 말한다. 고모를 만난 조반나는 그녀가 유부남 엔초와 사랑을 했고, 그 사실이 엔초의 가족에게 알려져 엔초의 가정은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얼마 후 엔초마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럼에도 빅토리아 고모는 아직도 엔초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그녀는 엔초의 부인과 아이들까지도 돌보고 있다.
조반나는 이후 자신의 아버지도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은 고모 빅토리아를 통해서 조반나의 부모님의 귀에 들어가고, 그들은 이혼한다. 조반나의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로도 조반나는 빅토리아 고모와 왕래를 하며 어른들의 삶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된다. 그렇게 그녀 자신도 어른이 되어간다.
소설이 쉽고 가볍게 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조반나의 방황과 성장담이 과장되거나 감정을 소모해야 할 만큼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혼란스러운 소녀의 심정을 격하게 서술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거나 눈물 즙 짜기를 유도하는 애잔함도 없다. 대신 그녀의 자존감과 반항심, 뒤틀린 욕망을 행동과 말로 표현한다. 우등생이던 조반나는 사건 이후로 말수가 줄고, 검은색 옷을 찾아 입고, 눈에는 검은색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고 다닌다. 아버지의 외도로 힘들어하면서 반대로 아버지를 미워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신 때문에 망가져 버린 엔초의 부인과 자식들을 돌보는 빅토리아 고모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내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저도 더 좋아지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코모 신부가 대답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교만함을 쫓아버려야 한단다.”
“그러고요?”
“다른 이들을 선하고 정의롭게 대하렴.”
“그러고요?”
“네 나이에 제일 하기 힘든 일이 있지.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는 일이야. 하지만 힘들어도 노력해야 한단다, 잔니나.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저는 더 이상 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어요.”
“어른이 되면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다 똑같다. 모두 어른이 되면 다 이해할 거라고 한다. 내가 말했다.
“차라리 어른이 되지 않을래요.”
엘레나 페란테 《어른들의 거짓된 삶》
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위선적이다. 그 위태로운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조반나가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 그런 그를 미워하지 못하는 어머니, 유부남을 사랑한 빅토리아 고모, 10년이 훌쩍 지나도록 잊지 못하고 그의 뒷바라지를 하는 그녀.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의 관계는 분명 모순적이다.
어른들의 수많은 위선 속에서 한 소녀의 잔혹한 성장기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비밀스러운 어른들의 세계를 조반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부부의 세계」가 현실적이고 냉혹한 외도를 그렸다면, 그 세계에서 집을 뛰쳐 나가 버린 아들의 방황과 혼란을 그린 소설이다. 드라마 속 그는 과연 그의 부모를 얼마만큼 이해했을까? 어쩌면 어른들의 뒤틀린 욕망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때문에 더욱 방황했을 수도…
어른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제를 잘 헤쳐나가지도 못한다. 그런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말하고, 직접 보고 겪은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그 모습이 소설 속 신부님과 "자신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고 말하는 빅토리아 고모와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을 들어야 하는 조반나에게는 헛소리로 들리고, 그들의 강요 뒤에 ‘왜?'라는 질문이 따라 나올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나중에 조금 더 크면 알게 될 거라는 핑계로 위선적인 어른들의 입장을 숨겨왔던 것은 아닐까?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은 도덕적이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도덕책에 나오는 대로,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방식대로 아이들이 따라와 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진지한 얘기를 시작하려면 닭살이 돋는다고 손사래를 치시는 아버지와 서른도 훌쩍 지난 아들에게 걱정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면서 부모님께 나는 아직도 사춘기 끄트머리에서 허우적대는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내들은 다 그런 부류야.”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잔니나, 내가 다 그렇다면 그런 거야. 다 똑같다니까.”
“엔초 아저씨도요?”
“그이는 더했지.”
“그런데 고모는 왜 아저씨에게 원하는 것을 준 거죠?”
빅토리아 고모는 놀라면서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모는 웃으며 내 어깨를 꽉 껴안고 내 뺨에 키스를 했다.
“잔니나, 넌 나랑 똑같구나. 아니, 나보다 더 독종이야. 이러니 내가 너를 좋아할 수밖에. 내가 엔초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준 건 그가 이미 결혼한 데다 아이가 셋이었기 때문이야. 내가 주지 않으면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지.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어. 너무나 사랑했으니까.”
나는 고모의 대답에 만족하는 척했다.
엘레나 페란테 《어른들의 거짓된 삶》
'책 리뷰, 독후감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읽어주는 동화책, '단어수집가' 소개 (0) | 2021.02.07 |
---|---|
[2020노벨문학상] 루이즈 글릭의 시집 'Faithful and Virtuous Night' 소개 (0) | 2021.01.22 |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 리뷰 (0) | 2020.09.29 |
[고전 소설] 조지 오웰의 '1984' 리뷰 (0) | 2020.09.07 |
책 '인 콜드 블러드' 리뷰 (0) | 2020.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