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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문학

[2020노벨문학상] 루이즈 글릭의 시집 'Faithful and Virtuous Night' 소개

by suis libris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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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즈 글릭Louise Glück의 시집

 

얼마 전 우연히 연예인들의 시 낭송을 들은 이후로 시집 몇 권을 샀다. 류시화 시인의 《마음 챙김의 시》에 실려 있는 몇 편의 시가 한동안 잊고 있던 시의 감성을 자극했다. 요 며칠은 인상 깊었던 시인의 시집을 찾아 읽는 중이다. 유명한 시들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시인의 시상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집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짬뽕처럼 섞여 있는 시집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엮어 만든 시집은 다양한 작가의 하이라이트(?)만을 뽑아서 즐길 수는 있지만, 지나치게 단편적인 인상만으로 시인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남기 때문이다. 소설에도 기승전결이 있듯 시집에도 흐름이 있다. 시집의 전반적인 흐름을 감상하기에 한두 편의 시로는 부족하다. 시를 따로 떼어 놓고 접했을 때와 작가의 시집 속에서 접했을 때는 확연한 차이를 갖는다.

 

시집 몇 권을 순식간에 구매하게 만든 시 한 편이 있다. 김혜수 씨가 낭독한 루이즈 글릭Louise Glück의 「눈풀꽃snowdrops」이 눈과 귀를 끌어당겼다.

 

 

루이즈 글릭 「눈풀꽃snowdrops」 (류시화 옮김) ※ 출처 : 수오서재 유튜브

 

 

 

눈풀꽃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루이즈 글릭 (류시화 옮김)

 

 

 

루이즈 글릭Louise Glück

 

 

 

미국 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인 루이즈 글릭은 2020년 노벨문학상 인터뷰에서 커피 마셔야 하니 인터뷰는 2분 안에 끝내 달라고 대답한 것으로 유명하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그녀는 명백한 시적 목소리로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개인적인 일상을 보편적으로 만들었다her unmistakable poetic voice that with austere beauty makes individual existence universal"라고 말할 만큼 그녀의 시는 일상과 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눈풀꽃」만 읽고는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 선정 사유이다. 오히려 자연 친화적이라고 평하는 게 더 적합할 듯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몇 편 더 접해본다면 선정 이유를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녀의 작품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특히 그녀의 작품 중에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녀가 자전적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찾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녀 시집의 국내 번역본은 찾을 수 없다. 1968년 첫 시집 발간 이후 10권이 넘는 시집을 발간했지만,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시집은 전무하다. 다른 영미(?) 시인들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소설 작품들은 제법 많이 번역되어 출간되는 반면, 시는 그 수가 현저히 적다. 문학작품 중에 특히 시는 언어 자체가 갖는 분위기와 뉘앙스가 중요한 만큼 번역이 힘들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시집이 소설보다 덜 읽히는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그녀의 가장 최신작 《충실하고 고결한 밤Faithful and Virtuous Night》은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감성 글귀 읽듯, 일상 에세이 읽듯, 원서 그대로의 감성 글귀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우리나라 시도 잘 안 읽는 요즘, 영문으로 시를 읽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루이즈 글릭의 시집은 원서 그대로라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집 표지

 

 

시집 전체적인 감상은 제법 좋았다. 언어적 장벽이 있었음에도 소박하고 꾸밈없는 시가 인상 깊었다. 격한 요동도 없었고, 감정 즙짜기도 없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조용하고 잔잔한 시들은 요즘 같은 시기에 힐링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어울릴 것 같다.

 

작품 일부만 소개하면 이렇다.

 

 

A SUMMER GARDEN

 

1. 

Several weeks ago I discovered a photograph of my mother

sitting in the sun, her face flushed as with achievement or triumph.

The sun was shining. The dogs

were sleeping at her feet where time was also sleeping,

calm and unmoving as in all photographs.

 

I wiped the dust from my mother's face.

Indeed, dust covered everything; it seemed to me the persistent

haze of nostalgia that protects all relics of childhood.

In the background, an assortment of park furniture, threes, and shrubbery.

 

The sun moved lower in the sky, the shadows lengthened and darkened.

The more dust I removed, the more these shadows grew.

Summer arrived. The children

leaned over the rose border, their shadows

merging with the shadows of the roses.

 

A word came into my head, referring

to the shifting and changing, these erasures

that were now obvious-

 

it appeared, and as quickly vanished.

Was it blindness or darkness, peril, confusion?

 

Summer arrived, then autumn. The leaves turnings,

the children bright sports in a mash of bronze and sienna.

 

...

 

 

 

어느 여름 정원 정도로 번역될만한 이 시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도, 요동칠 것도, 소란스러울 것도 없다. 이야기에는 위기가 있어야 하고, 상처가 있어야 하고, 고난이 있어야 하고, 고난을 이겨내는 극복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지만, 평온하기만 한 작품 속에는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뿐이다. 그 평범한 일상으로의 회귀를 이야기하듯, 사소하고 당연했던 순간의 소중함을 떠올리려는 듯 간결하고 명료하다. '여름은 왔고, 그리고는 가을Summer arrived, then autumn. 나뭇잎은 변해하고, 뛰놀며 붉은색 흙투성이가 된 아이들The leaves turnings, the children bright sports in a mash of bronze and sienna.'

 

이 시 「A SUMMER GARDEN」 의 마지막 5장은 이렇게 끝맺는다. '바람도 한 점 없었다There was no wind. 그 여름날 참나무 모양의 그림자가 초록 풀밭 위에 드리웠다.The summer day cast oak-shaped shadows on the green grass.' 어느 여름 정원에서 작은 일상의 이야기를 끝맺듯이.

 

 

 

... 

 

She sat on a bench, somewhere hidden by oak trees.

Far away, fear approached and departed;

from the train station came the sound it made.

The sky was pink and orange, older because the day was over.

 

There was no wind. The summer day

cast oak-shaped shadows on the green grass.

 

 

 

 

루이즈 글릭의 2020 노벨문학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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