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독후감/에세이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리뷰

by suis libris 2021. 4. 15.
728x90
반응형

한때 작가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다. 마치 화면 속 연예인을 보듯이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주 잠깐, 글을 쓰는 작가가 나의 이상형 대열에 들기도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눈과 삶을 대하는 깊이는 이과와 공대를 나온 이를 충분히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작가도 연예인도, 평생을 바쳐도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이들의 삶도 나름 소박하고, 애환이 있고, 삶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완서 작가 (1931.10.20 ~ 2011.01.22)

 

 

 

한국 근현대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 작가, 박완서 작가의 삶은 소박하기만 했다. 마흔이 되어서야 잡지사 (여성동아) 를 통해서 등단한 박완서 작가는 일찍이 여성으로 세상을 대하는 주체적인 작품을 다수 펴냈다.

 

 

 

 

 

 

이미 10년 전에 작고한 작가이지만, 박완서 라는 이름만으로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끊임없이 읽힌다. 아마도 작가 특유의 소탈함과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으로서의 문제의식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박완서 작가 10주기,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에 이렇게 써 놓고도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10주기에 맞춰 그녀의 베스트 에세이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총 35편으로 이루어진 에세이에는 그녀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일부러 천천히 읽을 만큼 아껴서 읽은 에세이 한 권은 그녀의 딸이 작성한 책의 서문처럼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과 생의 기쁨과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녀가 마흔이 되어서 소설가로 등단했던 일화, 작가라는 삶을 살아가는 심정, 자식을 먼저 보내고 기나긴 터널을 보내야 했던 때,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삶에서 느끼는 사사로운 애환,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이 책에 녹아 있다. 글에는 사람의 성품이 담긴다는 말이 있듯이,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 박완서의 성품은 올곧고 소박하다. 그녀의 노모의 한 마디를 되짚어가며 써 내려갔을 것 같은 사소한 일화가 그녀의 성품을 대신한다.

 

 

 

 

거액을 사기당한 얘기로부터 버스 칸에서 가방을 받아준 고마운 아줌마에 의한 만년필을 소매치기당한 얘기까지, 도시 고위층의 공약에 속은 얘기로부터 100원짜리 상품의 용량을 속고, 바겐세일의 반값에 속은 얘기까지 두루두루 속은 얘기들로 경합을 벌이다가 보니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는 활기를 띠었다. 그건 분명히 유쾌한 화제가 못 되었을 텐데도 우린 어느 틈에 그걸 즐기고 있었다. 미담보다는 악담에 더 정열적인 게 천박한 기질이라는 걸 돌볼 겨를도 없었다.

이때 언제부턴지 우리의 이야기판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던 팔십 노모께서 혼잣말처럼 한마디 하셨다.

"난 뭔 복도 많지. 이 나이에 그런 못된 사람들을 별로 못 겪어봤으니…."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구태의연하게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그 힘겨움은 견뎌낼 때는 쓰리고 아프지만, 지나고 돌아보면 이겨내지도 못할 것도 아니었지... 싶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쓰라린 순간이 있기에 미련함에서 미세하게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년 전 참척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거였다. 원망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부끄러움까지 겹쳤다. 저 여자는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저런 일을 당했을까? 수군거리면서 손가락질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만 보고 흉보는 것 같아 두문불출하고 있어도 하늘이 부끄럽고 땅이 부끄러웠다.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 하늘도 부끄럽고 땅도 부끄러워 이 세상에는 도저히 피할 곳이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때 만난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그 수녀님은 아직 서원도 받기 전인 예비 수녀님이었다. 그러나 학덕 높은 현자보다도,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일컬어지는 성직자보다도 더 깊은 가르침을 나에게 주었다. 그건 깊다기보다는 아마 적절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이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데 작은 위로가 되어줄 방법이 있다면 자신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너저분하게 늘어놓는 것보다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짧은 한마디 아닐까. 나와 함께 아파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갈 용기가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따뜻한 에세이 한 권으로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삶을 꿰뚫는 성찰도 벼락부자로 만들어 줄 신박한 아이디어도 담겨있지 않다. 하지만 소박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 작가의 글을 읽는 이유는 오늘을 계속 지속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때로는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의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삶의 돛대를 변향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권의 에세이도 잘 읽었다. 아껴서 읽을 만큼 좋은 책을 만났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