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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에세이

[추천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리뷰

by suis libris 202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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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는 말이 평소에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 글에 진심을 담기 위해서는 화려한 문채나 수준 높은 필력이 굳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여든 앞에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라는 부제처럼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에는 순천 소녀시대 할머님들의 이야기기 책 속에 담겨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익숙한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관계, 20세기 대한민국 여성으로서의 아픔, 가난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한, 글을 모르기 때문에 느껴야 했던 소외감과 수치심,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한 글공부와 그림 공부가 책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책에는 총 20분의 할머님들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권정자, 김덕례, 김명남, 김영분, 김유례, 김정자, 라양임, 배연자, 손경애, 송영순, 안인심, 양순례, 이정순, 임순남, 임영애, 장선자, 정오덕, 하순자, 한점자, 황지심, 이제는 작가님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작가님들의 글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넓어진 마음

 

글을 배우니까 마음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통장도 볼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성경책도 잘 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봉사를 다닐 때도 글을 아니까 더 즐겁습니다.

 

자신감이 생기니까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자식들도 내가 글을 배운다고 좋아합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잘 못 그렸습니다.

그런데 자꾸 그리다 보니 솜씨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 바람은 지금 처럼 공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믿음 생활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림도 많이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글을 배우면서 삶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인상적인 것은 새롭게 꿈을 품게 되었다든 기쁨과 희망을 볼 때 감동을 느낀다. 노년은 무엇이든 시들어 가는 시기라는 선입견에 마주하기 불편한 현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새로운 배움이 있는 그분들에게는 더욱 큰 삶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변화의 원동력으로 여겨지는 듯싶다.

 

 

 

 

덴푸라

 

형편이 어렵다 보니 싸고 양 많은

덴푸라를 매일 도시락 반찬으로 싸 줬습니다.

딸들이 말 없이 잘 먹어서 좋아하는 줄

알고 집에서도 자주 해줬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딸들과 이야기를 하다

어릴 때 덴푸라를 질리게 먹어서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가 너무 배우고 싶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껏 자식들 맘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낮에는 남의 집에 일을 다니고

잠에는 구슬을 하나라도 다 꿰려고 밤잠을

설치며 살았는데 형편은 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잘해 주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윗세대들과 적잖은 갈등을 겪는 이유는 그들의 삶과 그들이 살아온 방식을 이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양 많은 덴푸라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겪어오면서 거칠어졌고, 억척스러워졌고, 투박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 사실을 알기에 겨울이면 길거리에서 꼬치 어묵과 국물이 생각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시절을 겪어온 부모님들, 혹은 할머님들에 대한 연민과 존경이 입맛에 녹아들었는지도 모른다.

 

 

 

 

 

치매 앓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제삿날 시동생은

마트에서 막걸리 한 병과 사과 세 개를 사서

배달을 시켜 놓고 시어머니도 안 보고 갔습니다.

 

시어머니는 4년째 치매를 앓고 계셔서

내가 대소변을 받아 내고 있었습니다.

잠시라도 집을 비우면 변기통에 세수를 하고

가스에다 신발을 태우고 냉장고를 뒤져

엉망을 해놨습니다.

 

나는 혼자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 동서 셋이서

1년에 두 달씩만 모셔 주면 나머지는 내가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못 모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시누들까지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나는 어버이날이 되면 시어머니가 불쌍해서

꽃을 사다 달아 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그 많던 재산을 술과 여자, 노름으로 다 없애고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습니다.

학교도 안 보내 주고 술 먹고 노름하고

여자를 집까지 데려와 엄마랑 셋이 함께

잠을 자고 밥상까지 차려 바치게 했습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고

엄마 산소에 갈 때도 아버지 묘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글을 배우면서부터 조금씩 마음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 산소에 절을 올렸습니다.

 

 

 

 

 

길지 않은 할머님들의 그림일기를 읽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나 짊어질 수밖에 없는 가족에 대한 무게와 갈등, 그리고 그걸 알아가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어쩌면 인생의 일면은 아닐까? 20명의 작가님들의 정성스레 써 내려간 글에서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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