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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에세이

요제프 괴벨스의 개인 비서, 브룬힐데 폼젤의 '어느 독일인의 삶' 리뷰

by suis libris 2021.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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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시대, 나치의 나팔수 노릇을 한 요제프 괴벨스의 속기사 겸 개인 비서로 일했던 여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가장 끔찍했던 시대를 가장 화려했던 시대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마치 선택받은 이들처럼 정부로부터 받는 특혜를 누리며 정권의 말단 직원이었던 시절을 추억할지도 모른다.

 

 

 

《어느 독일인의 삶Ein deutsches Leben》 표지

 

 

 

《어느 독일인의 삶Ein deutsches Leben》은 괴벨스의 개인 비로 근무했던 브룬힐데 폼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쓰인 책이다. 2016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뒤에 책으로 발간된 책으로 105세였던 브룬힐데 폼셀의 삶을 재조명한다.

 

책은 그녀가 겪었던 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나치 정권이 막을 내린 1945년 8월 수용소 수감, 1950년 수용소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를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삶을 회상하는 그녀는 아이히만처럼 그저 착한 한 독일인의 삶을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독일인의 삶Ein deutsches Leben》 목차

 

 

 

그녀는 그저 운이 좋게 독일(제국) 방송국에 뽑혔고, 나치 선전 장관인 괴벨스의 개인 비서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저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운 좋게 얻었고, 그 일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그녀는 탐욕과 나치 정권 하에서 누려왔던 혜택과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보였던 비이성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나치의 몰락과 함께 자신의 삶이 몰락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속기사) 일에 충실하고, 방송국 일을 위해 패망하고 있는 나치 정권의 비밀 지하 벙커로 돌아가는 그녀의 선택을 미뤄봤을 때, 그녀는 당시 그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6장. 난 책임이 없어요

 

 

 

나는 그녀가 다른 나치 전범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듯 말하는 그녀의 말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거대한 역사적 굴레에 작은 희생자일 뿐이라고, 단지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역사적 격변기를 살아가면서 브룬힐데 폼셀의 삶은 패망한 정권과 함께 몰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글을 읽다보면 힘 없는 한 여인의 흥망성쇠를 보는 듯 하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선택이, 그녀의 삶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패망한 정권에서 단순히 어떤 일을 담당했다고 직접적인 가해자처럼 취급 받는 것은 부정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적인 욕망이나 출세에 대한 동경, 성공에 대한 집착이 불러올 수 있는 그릇된 선택과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브룬힐데 폼젤은 나치 정권의 다른 어떤 산증인들보다 더 솔직하게 자시의기회주의를 인정한다. 그녀가 정치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과 훗날 국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전면에 내세운 것은 청소년기의 이기심과 개인적인 욕망이다. 가난의 경험, 사회적 추락에 대한 공포, 부와 출세에 대한 동경. 이것이 그녀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기까지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폼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적 출세였다. 그랬기에 상사인 요제프 괴벨스의 행위들을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서 뭔가 개인적인 출구를 모색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손쉽게 외면하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어느 독일인의 삶》 본문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본다. 과연 우리는 브룬힐데 폼젤의 입장이 되었다면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혹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연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어쩌면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범죄자들과 일을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당시에는 알 수 없었어요. 내가 선전부에서 일할 당시 나한테 가장 높은 사람은 괴벨스였어요. 히틀러 다음이었죠. 그런 사람의 지시가 부서를 거쳐 나한테 내려왔어요. 그럼 따를 수밖에 없죠. 러시아 군인이나 프랑스, 영국 군인들한테 총을 쏘라고 명령받은 우리 병사들처럼요. 명령에 따라 총을 쏜 사람들을 두고 살인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병사들은 그저 의무를 다한 것뿐이에요. 나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부당한 짓을 한 경우에만 그럴 거에요. 하지만 난 누구한테도 그런 짓을 한 기억이 나지 않아요.

 

《어느 독일인의 삶》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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