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올 무렵 젊음의 신록을 한창 즐기고 있었다. 서른도 아직 한 참 남았는데, 마흔이라니…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아마 그쯤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마흔은 왠지 젊음과 나이 듦을 구분하는 숫자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고, 늙고, 쇠약해지고, 시들어 간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무서웠다. 마흔이 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했고, 사십 대가 되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던 적도 있었다.
아직 꽃봉오리가 맺히기도 전이었기에 마흔이 활짝 핀 꽃인지, 이미 다 피어버린 꽃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이 어리석었다. 마흔 이후의 삶은 모든 것이 틀에 박혀 돌아가는 일상,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 너무 안정적이라 심심해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리고 철없고 거만한 생각이었다.
마흔 줄에 거의 도착해서, 철없던 생각했던 그때 나온 책 한 권을 손에 넣었다. 윌리엄 새들러의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마흔 이후의 삶을 서드 에이지the third age, 2차 성장기라고 말한다. 그 성장기를 젊음이라는 거만함으로 지나치게 안일하고 단순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은 이미 대중화된 6가지 조언들로 이루어졌다. 중년의 〈정체성〉 확립하기, 〈일〉과 〈여가 활동〉의 조화, 〈용감한 현실주의〉와 〈성숙한 낙관주의〉의 조화,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 〈진실한 성찰〉과 〈과감함 실행〉의 조화, 〈자신만의 자유〉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의 조화 같은 것이다. 마흔 이후 중년기와 노년기에 대한 시각이 이미 많이 변했다. 서드 에이지가 보편화된 것이다. 그래서 더욱 철 지난 고리타분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마흔 언저리에 찾아오는 자신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에 필요할 법한 조언들이 제법 눈에 띈다.
6가지 조언 중에 개인적으로 ‘자신에 대한 배려’가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사회적 성공,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는 인정받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보냈기에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다. 일과 성공을 목표로 하다 보면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낯설어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라는 조언을 마흔이 넘은 어른들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
"저는 지난 한 해 동안 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병원에서 저는 끊임없이 자문했죠. ‘넌 누구니?’ 그때마다 남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는 웃는 얼굴의 남자가 제 눈앞을 스치더군요. 하지만 그 뒤엔 뭐가 있을까요? 지금 저는 제가 되고 싶고, 또 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십 대에 내가 되고 싶고, 또 내가 될 수 있는 사림이 되는 법을 배운다니,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중년에 접어든 세대에게 인생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이 아니라 지금 던져야 하는 것이다.”라는 책의 문장처럼 충분히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너무 늦었다고 의례 겁을 먹고 포기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일어서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과거의 기준에 맞춰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흔 이후 30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먼저 찾는다.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투자에 반드시 피 끓는 젊음이 동반할 필요는 없다. 투자는 투자일 뿐이다.
무엇이든 새롭거나 색다른 것을 낡은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미묘한 형태의 무심함이 눈에 띄게 힘을 얻는다. 우리가 오십여 년 이상 살아오면서 갖게 된, 더 이상 경험으로부터는 새롭게 배울 게 없다는 무심한 결론은 우리의 성장과 변화를 위험에 빠뜨린다. 낡은 각본을 무작정 따른다면 거기에 더 이상 진보는 없다.
나이 들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강박 때문에 지나치게 소극적이 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마흔은 너무 서둘러 결정지으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도 지금까지 해왔다는 굴레 안에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굳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오늘도 성장하는 목표를 갖는 것은 어떨까? 무언가를 이루려는 꿈보다 모험을 피하지 않는 용기 있는 하루를 보내는 목표에서 점잖은 멋이 느껴진다.
“지금 당장 뭔가 이루는 게 제 꿈은 아니에요. 이후에도 제가 지금 시작한 것을 계속하는 것이 제 목표지요. 그건 좀 더 대담한 모험이 될 것이고 그러려면 조금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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