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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에세이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리뷰

by suis libris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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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그 이름 ‘우울증’. 가끔 기분이 몹시 가라앉거나 기분이 무척 안 좋을 때 ‘혹시 나도 우울증인가?’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혹시 나도 과거 한때 앓고 지나갔을지 모를 그 흔하디 흔한 우울을 나는 멀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지하 깊숙이 가라앉은 것 같은 감정을 감히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냐고 겁을 집어먹고, 의례 포기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나는 우울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게 어떤 것인지 너무 몰랐다.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을 극복한 린다 개스크의 《당신의 특별한 우울》은 나에게 우울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누구나 이 정도 우울함은 느끼며 산다는 사실에 위로받고, 어떤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한 감정에서 빠져나오는지를 새로이 알게 되었다. 우울, 고독, 상실과 같은 감정들 늘 일상과 함께하고 있지만 나는 그 감정들을 왜 이리도 부자연스럽게 느꼈던 걸까? 나는 무서워 그 감정들을 회피해 다니기에 바빴는지도 모른다.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나는 제임스 선생이 재니스를 면담하는 자리에 동석해(두 사람의 대화는 CCTV로 다른 팀원들에게도 중계되었다), 두 사람이 벌이는 설전을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선생은 계속 그녀의 견고한 방어를 뚫으려고 시도했고, 그녀는 능숙하게 공격을 피했다. 재니스는 미술 학도였다. 죽으려고 했던 것은 자기 코 생김새가 너무 싫어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외모가 끔찍이도 싫고 매우 거슬린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외모였다. 그러나 외모 때문에 우울증이 워낙 심해져 자살밖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자기 딴에는 매우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해해보려고 무척 애썼다. 외모가 생존 의욕까지 위협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된다니? 그러나 나는 차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진짜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 깊숙이 숨어있었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외모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상태를 가리켜 ‘신체이형장애’라고 한다. 재니스의 경우는 이 장애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듯했다. 어머니가 딸에게 몹시 비판적이었기에, 재니스는 겉으론 거칠어 보여도 속으로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했다., 그리고 불만은 자신의 외모에 집중됐다. 과거 어머니와 관계로 인해 자기상에 손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도 손상된 것이었다. 아픈 기억이 있었고,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한번은 엄마가 그랬어요. 세상에 너 좋다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나 봐라… 얼굴도 못생기고 마음도 못생겨 가지고….” 그녀가 내게 털어놓았다. 

“상처가 정말 컸겠네요….” 

그녀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도 아파요.” 

 

 

 

너무도 쉽게 찾아오는 우울감은 그 원인과 형태도 다양하다. 각양각색으로 표현되는 증상은 누군가에게는 생을 마감하기 위한 이유를 어떻게든 찾으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단순할 수 있고, 지나치게 나약해 보일 수 있다. 가끔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모두 그 현상이 발현되는 이유가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어떤 이유로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되었든, 그 순간을 겪는 사람들은 덜 심각하지도, 덜 강인하지도 않다.

 

 

 

“가족 이야기 좀 해줄 수 있어요?” 내가 다시 물어보았다. 

“뭐 딱히 싫다고는 할 수 없죠. 부모님이 저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니까요. 하지만 전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그녀가 흐느꼈다.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꼭 돼야 해요?” 

“… 특이한 사람이 되긴 싫어요.” 

“이미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말없이 어깨만 으쓱한다. 무언의 응답이다. 

“특이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왜요? 그게 왜 괜찮아요?”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되니까요. 거기에서 어디로든 가면 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주저와 동조가 섞인 눈빛이 읽혔다. 입가에는 처음으로 미소가 스쳤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지나친 기대감이,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사실이 안에서 곪다가 다른 모습으로 발현된다. 

 

 

 

세상에 단일한 진실이란 없다. 저마다 몇 개의 안경 너머로 각자의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뿐이다. 남들의 기억과 인식과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람은 자기 필요에 맞는 진실을 만들어간다. 좋건 나쁘건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스토리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일기를 쓰면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만들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거를 조금씩 되돌아볼 수 있고, 과거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는지 차츰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지금도 우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과거의 횡포에 맞서 그 힘을 무력화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몸이 아프면 원인을 찾아 치료할 수 있지만, 우울증에는 그런 치료가 없다. 몸에 암 덩이라기 있으면 떼어내면 되고, 혈압이 높으면 혈압을 낮춰주는 약을 먹으면 되지만, 우울증을 치료해주는 약이나 시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증상을 완화해줄 뿐, 내 안에서 동작하는 복잡한 근원들은 내가 도려내야 한다.

 

 

 

“이제는 과거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잊고 싶어요.” 

본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아마 옳은 선택일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사람은 우울해지면 과거를 곱씹지만 잘살고 있으면 과거 생각에 그리 얽매이지 않는다. 현재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꼭 파고들 필요는 없다. 자신이 우울증에 취약하다고 해서 약하거나 열등한 인간은 결코 아니라는 걸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때로 잊기 쉬운 사실이지만, 잊지 않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모든 결점과 허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심리치료사들은 자기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혹 자기애를 이기심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둘은 다르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남을 아껴줄 수 있으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백 번 틀리지 않다. 자신만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며, 그 모든 것을 평온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미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선택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선택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건 물론 아니었다. 특히 연애에 성급히 빠져드는 문제는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듯했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사연이 있는 게스트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채널이 있다. 게스트로 출연한 이와 이야기를 하며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그림을 함께 그린다. 미술치료(?)처럼 보이기도 하는 영상 속에 다양한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 혼자만 힘들어하는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똑같은 인간으로서 누가 누굴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 유일하다. 나에게 상처를 남긴 이도, 그 상처를 극복하도록 힘을 주는 이도, 모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이, 그리고 짧은 이 글이 우울에 빠져있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신과 의사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있는 린다 개스크의 짧은 마음속 다짐을 남겨 놓는다. 

 

 

 

나는 지금 내가 있고 싶지 않은 곳에 있다. 

주위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하지 않는 듯한 사람들뿐이다. 

나도 그중 몇 사람은 정말 싫다. 

야심만만하고 당당한, 저마다 저의를 감추고 

뭔가 벼르고 있는 사람들. 

 

잠깐 멈추자. 

숨을 크게 쉬자. 

내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생각하자. 

내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자. 

그런 것들을 이루려면,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좋아할 필요도, 

그들이 나를 좋아할 필요도, 

그들과 비슷해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내 고양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귀를 쓰다듬고 있다고 생각하자. 

말할 기회를 가만히 기다리다가, 

숨을 다시 크게 쉬고, 

최소한의 말로 내 요지를 전하자 

그리고 입 닫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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