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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에세이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 리뷰

by suis libris 20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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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품을 대할 때 작가가 여성인지 혹은 남성인지 의식하며 작품을 감상한 기억이 없다.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빛나고, 작가가 누군지에 상관없이 작품은 어느 정도는 독자에 따라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의 문학을 별도로 분류하진 않지만, 여성 문학은 구분한다.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고발이고,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드리워진 선입견에 대한 경적을 울리는 작품이다. 그 작품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여성 운동이나 여성 권위 신장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서 당시 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여성에 대한 시선은 가끔은 참혹할 만큼 답답할 때가 많다. 누군가에게는 신비스러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속박된 삶을 고발한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문학 작품을 통한 고발이 반드시 여성의 손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라서 아쉽다.

 

올해 들어 여성에 관한 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여성 예술가들의 하루를 소개하는 책부터, 여성 화가에 관한 책, 1980년대 우리나라 여성상을 신랄하게 그려낸 문학, 2차 세계 대전을 겪어낸 소녀 병사들의 이야기까지. 이런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계속 발간되었겠지만 유독 올해 나의 눈에 자주 띈다. 형태도, 주제도, 분야도 다양하다.

 

 

로런 엘킨 《도시를 걷는 여자들》

 

 

작가 로런 엘킨의 일상과 여성 문학이 잘 버무려진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여성 문학이라는 연결고리를 빼더라도 그녀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잘 드러난다. 그녀가 파리 카페에서 느낀 안락함, 도쿄에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감정, 베네치아에서 느꼈던 수긍하는 삶, 주체적이고 강인한 모습까지.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마사 겔혼의 삶을 끌어와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그녀의 일상은 에세이 자체로도 흥미롭다. 어쩌면 로런도 자신의 삶 일부를 과거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혹은 그녀들의 삶 속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자신의 모습과 매우 닮았음을 느꼈을 것이다.

 

 

여성들이 도시를 마음껏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된 게 2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1879년 우크라이나 화가 바시키르체프의 일기를 보면 거리를 거닐 수조차 없는 자유가 없음에 답답함을 토로한다.

 

 

 

나는 혼자 집 밖에 나갈 자유를 갈망한다. 가고, 오고, 튀일리정원 벤치에 앉고, 무엇보다도 뤽상부르에 가서 상점마다 장식된 진열창을 구경하고 교회와 박물관에 들어가고 저녁에는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고 싶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게 그거다. 이런 자유가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거리를 거닐 수 있다는 인식은 서서히 변해왔다. 재미없는 역사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1937년도에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The years》을 읽어보더라도 그 변화는 눈으로 느껴진다. 소설이 이렇게 마무리한다. 걸어가도 해롭지 않다고.

 

 

 

이 소설은 여자들이 원하는 대로 도시의 거리를 걸어서 오갈 수 있는 자유, ‘거리 배회’를 상상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온 가족이 딜리아가 연 파티에 한데 모인다. 딜리아는 아일랜드인과 결혼해서 영국을 오래 떠나 있었다. 다들 새벽 늦은 시간까지 떠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다가, 70대가 된 엘리너가 밤이 늦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지하철이 끊겼고 버스도 안 다녀.’ 엘리너가 돌아보며 말했다. ‘어떻게 집에 가지?’ ‘걸어가면 돼.’ 로즈가 말한다. ‘걸어가도 해롭지 않아.’”

 

 

 

American Girl in Italy by Ruth Orkin in 1951

 

 

 

「American Girl in Italy」이라는 이 사진은 Ruth Orkin의 1951년 작품이다.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찍은 이 사진은 다양한 의미로 유명하다. 100년도 안 된 사진이지만 이 사진 속 여성을 향한 시선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다.

 

꼭 이런 종류의 인식이 변했다는 내용이 아니라도 그간 여권 신장에 관한 노력과 변화와 얽힌 다양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마음껏 문밖을 나설 수 있고,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게 된 이야기라도 말이다.

 

 

 

내가 파리를 가장 진하게 경험한 것은 문학을 통해서도 음식을 통해서도 박물관을 통해서도, 파리 부르스 역 근처 다락방 시절에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긴 연애를 통해서도 아니었다. 수도 없이 걸어서 였다. 파리 6구 어딘가를 헤매며 평생 도시에 살고 싶다, 특히 파리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행동이 나에게 안겨준 전적인 자유의 느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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