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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독후감/에세이21

'사람에 대한 예의' 책 리뷰 4주 후에 다시 보자는 말로 끝나던 〈사랑과 전쟁〉은 어머니의 최애 프로였다. TV를 거의 시청하지 않던 어머니는 내가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남의 집 막장 스토리를 틀어 놓으셨다. 그 기가 막힌 얘기들이 진정 어머니의 흥미를 끌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이만 가득 찬 당신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매번 막장으로 치닫는 스토리가 보기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불편한 얘기들을 왜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둡고 더럽고 아픈 다른 이들의 각색된 드라마를 굳이 TV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방영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추잡한 사실을 마주한 불쾌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 2020. 11. 16.
토드 메이의 '부서지기 쉬운 삶' 책리뷰 상처를 잘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웬만한 일에는 그저 초연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 어지간히 크고 작은 상처에는 이골이 날 만큼 긴 시간을 보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상처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 과거의 상처는 들추고 싶어 하지 않고, 상처를 준 이들에게는 어금니에 힘이 들어갈 만큼 분통을 느낀다. 상처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피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진심을 다 하지 않거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지긋지긋해진 상처의 고통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다. 진정 상처 받지 않는 삶을 원하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기제가 동작하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는다. 마음에도 탄성.. 2020. 11. 8.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 리뷰 나는 작품을 대할 때 작가가 여성인지 혹은 남성인지 의식하며 작품을 감상한 기억이 없다.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빛나고, 작가가 누군지에 상관없이 작품은 어느 정도는 독자에 따라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의 문학을 별도로 분류하진 않지만, 여성 문학은 구분한다.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고발이고,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드리워진 선입견에 대한 경적을 울리는 작품이다. 그 작품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여성 운동이나 여성 권위 신장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서 당시 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여성에 대한 시선은 가끔은 참혹할 만큼 답답할 때가 많다. 누군.. 2020. 11. 3.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리뷰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그 이름 ‘우울증’. 가끔 기분이 몹시 가라앉거나 기분이 무척 안 좋을 때 ‘혹시 나도 우울증인가?’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혹시 나도 과거 한때 앓고 지나갔을지 모를 그 흔하디 흔한 우울을 나는 멀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지하 깊숙이 가라앉은 것 같은 감정을 감히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냐고 겁을 집어먹고, 의례 포기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나는 우울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게 어떤 것인지 너무 몰랐다.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을 극복한 린다 개스크의 《당신의 특별한 우울》은 나에게 우울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 2020. 10. 27.
책 '명랑한 은둔자' 리뷰 한 때 에세이라는 장르를 편독했던 시절 나는 책으로 사람, 콕 짚어 말하면 책의 저자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 한껏 심취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 너머 그/녀와 실컷 수다를 떨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모든 종류의 글이 똑같겠지만 에세이는 특유의 멋이 있었다. 작가의 일기장 같기도 했고, 이따금씩 낙서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한순간 느낀 감정과 생각을 몇 페이지로 되살려냈고,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 일을 겪은 주인공의 생각을 읽어 내려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는지 궁금했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그 궁금증을 에세이로 풀었다. 오랜만에 내가 에세이를 즐겨 읽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책장을 덮고 겉면에.. 2020. 10. 24.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 리뷰 중세 유럽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좁고 꼬불꼬불한 차도, 울퉁불퉁한 인도, 사람을 기다리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광장, 낡은 건물과 가스등 모양을 한 거리의 가로등까지 옛 풍경이 그대로다. 도시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 같다. 눈을 돌리면 볼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나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유럽의 일부 도시들은 몇백 년, 혹은 그 이상 현재와 같은 도심으로써의 기능과 지위를 지켜오고 있다. 나는 이방인이 되어 도시를 여행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느껴보려 애써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차도 위를 달리는 전기 자동차와 낡은 건물에 들어선 익숙한 햄버거 가게들 뿐이다. 처음 유럽을 여행할 때 기억을 떠올리면 이런.. 2020. 10. 6.
에세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 리뷰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삶을 위한 게으름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거의 10년 동안 일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일에 매어 생활했다. 일 중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생활은 이미 일(학생 때는 공부)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기 싫고, 지겹고, 지긋지긋하지만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심스럽다가도, 하루를 알차고 성실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뿌듯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중독 증상이 꼭 생활이 피폐해질 정도로 심각한 수준일 필요는 없다. 더욱이 중독이 반드시 절제할 수 없을 만큼 (게임이나 도박, 음주와 같은) 특정 행동을 반복하거나, 그만하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행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달리 무엇을 해.. 2020. 8. 6.
책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리뷰 이 책이 나올 무렵 젊음의 신록을 한창 즐기고 있었다. 서른도 아직 한 참 남았는데, 마흔이라니…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아마 그쯤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마흔은 왠지 젊음과 나이 듦을 구분하는 숫자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고, 늙고, 쇠약해지고, 시들어 간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무서웠다. 마흔이 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했고, 사십 대가 되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던 적도 있었다. 아직 꽃봉오리가 맺히기도 전이었기에 마흔이 활짝 핀 꽃인지, 이미 다 피어버린 꽃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이 어리석었다. 마흔 이후의 삶은 모든 것이 틀에 박혀 돌아가는 일상,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 너무 안정적이라 심심해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리.. 2020. 7. 9.
헨리조지 '진보와 빈곤' 리뷰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나 세계사 시간에 토지 제도는 단골 시험 문제였다. 토지 문제가 어떻게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켰는지 교과서와 문제집에 제법 자주 등장했다. 신라 시대에는 관료전(관료에게 지급된 토지)을 지급하고 녹읍(토지의 세금을 녹봉으로 받는 일)을 허락함으로써 지방 호족들과의 정치적 대립을 초래했고, 고려 시대는 전시과(관료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던 제도)와 과전법(토지를 국유화하기 위해 실시했던 제도)이 토지의 국유화와 사유화가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근대 서구 사회로 넘어오면서 제법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산업 혁명으로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노동 생산성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었다. 하지만 동일한 면적의 토지에서 더 많은 양의 생산물을 만들어 냈음에도 노동 계층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 2020.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