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36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 《니클의 소년들》 리뷰 우리나라는 빠른 산업화에 따른 변화로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서구 사회, 특히 미국에서는 흑인의 인권 변화가 비슷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언행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야 하고, 민족, 피부색, 문화, 종교, 성별의 차별은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 세기도 전의 상황은 무척이나 달랐다. 명백한 계급이 있던 시대. 차별과 멸시가 당연시되고, 삶 자체를, 어떨 때는 생명까지도 다른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던 시대. 우리는 그런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런 시대를 겪어온 이들이 아직 살아서 숨 쉬고 있다. 60년대와 70년대, 80년대를 살아온 이들은 그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흑인 차별을 몸으로 겪었다. 《니클의 소년들》은 1960년대 그 실상을.. 2021. 2. 12.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리뷰 책을 읽은 후에 나름 눈으로 먹고 속으로 씹고 삼킨 감상들을 뱉어내고 싶은 책이 있다면 반대로 글들을 조용히 체화하고픈 책이 있다. 어쩌면 체화해야 하는 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로 더 잘 알려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단순히 책이 역사적 오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말을 잊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한참을 읽어 내려가다가도 앞 장으로 돌아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광범위한 배경지식을 요하는 문장들로 도배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하는 아픔을 말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유대인 학살자를 유대인의 법정에 세움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던 2년간의 행적이 충분히 만족할 만큼 폭넓게 논의되고 인류가 고심해 봐야.. 2020. 12. 22.
[책리뷰] 과학 에세이 '칼 세이건의 말' 리뷰 열 살이 되도록 산타가 실존한다고 믿고 있는 순수 ‘소년은 산타는 없다’는 주변 친구들의 말에도 자신만의 주장을 이어나가기 위해 증거와 논리적 근거를 수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명백하지는 않지만 여러 정황적 증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이어갔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소년의 엄마는 아들이 굳게 믿고 있는 산타의 존재가 모두 자신들의 순수한 마음에서 만들어낸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기가 두려웠던 것일까? 아들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아 이어온 자신들의 거짓말 때문에 덜컥 겁이 났던 게 틀림없다. 아니면 진짜로 산타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을지도. 이야기를 듣고 열 살 소년의 논리적 사고 능력이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산타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고 싶은 그의 노력은 상상.. 2020. 12. 11.
[책리뷰] 토드 메이의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 리뷰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진리를 실천하면서, 닮고 싶은 위인이나 멘토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혹은 가까운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배웠던 교육에 맞춰 살아간다. 더 나은 사람이란 어떤 모습일까? 조금 더 괜찮은 삶이란 어떤 삶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명확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어떤 종류의 답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막막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받는다. 특히 환경이나, 질병, 난민, 인권과 같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는 더욱 도전적으로 묻는다. 답을 내놓으라고. 도덕적 생활의 한 가지 방식으로 ‘품위decency’라는 말을 사용했다. 내가 말한 품위는 의무, 옳음, 공리, 선과 같은 도덕철학의 전통적 개념들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대부분의 사.. 2020. 11. 18.
'사람에 대한 예의' 책 리뷰 4주 후에 다시 보자는 말로 끝나던 〈사랑과 전쟁〉은 어머니의 최애 프로였다. TV를 거의 시청하지 않던 어머니는 내가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남의 집 막장 스토리를 틀어 놓으셨다. 그 기가 막힌 얘기들이 진정 어머니의 흥미를 끌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이만 가득 찬 당신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매번 막장으로 치닫는 스토리가 보기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불편한 얘기들을 왜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둡고 더럽고 아픈 다른 이들의 각색된 드라마를 굳이 TV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방영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추잡한 사실을 마주한 불쾌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 2020. 11. 16.
토드 메이의 '부서지기 쉬운 삶' 책리뷰 상처를 잘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웬만한 일에는 그저 초연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 어지간히 크고 작은 상처에는 이골이 날 만큼 긴 시간을 보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상처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 과거의 상처는 들추고 싶어 하지 않고, 상처를 준 이들에게는 어금니에 힘이 들어갈 만큼 분통을 느낀다. 상처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피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진심을 다 하지 않거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지긋지긋해진 상처의 고통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다. 진정 상처 받지 않는 삶을 원하는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기제가 동작하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는다. 마음에도 탄성.. 2020. 11. 8.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 리뷰 나는 작품을 대할 때 작가가 여성인지 혹은 남성인지 의식하며 작품을 감상한 기억이 없다.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빛나고, 작가가 누군지에 상관없이 작품은 어느 정도는 독자에 따라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의 문학을 별도로 분류하진 않지만, 여성 문학은 구분한다.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고,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고발이고,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드리워진 선입견에 대한 경적을 울리는 작품이다. 그 작품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여성 운동이나 여성 권위 신장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서 당시 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여성에 대한 시선은 가끔은 참혹할 만큼 답답할 때가 많다. 누군.. 2020. 11. 3.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리뷰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그 이름 ‘우울증’. 가끔 기분이 몹시 가라앉거나 기분이 무척 안 좋을 때 ‘혹시 나도 우울증인가?’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혹시 나도 과거 한때 앓고 지나갔을지 모를 그 흔하디 흔한 우울을 나는 멀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지하 깊숙이 가라앉은 것 같은 감정을 감히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냐고 겁을 집어먹고, 의례 포기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나는 우울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게 어떤 것인지 너무 몰랐다.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을 극복한 린다 개스크의 《당신의 특별한 우울》은 나에게 우울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 2020. 10. 27.
책 '명랑한 은둔자' 리뷰 한 때 에세이라는 장르를 편독했던 시절 나는 책으로 사람, 콕 짚어 말하면 책의 저자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 한껏 심취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 너머 그/녀와 실컷 수다를 떨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모든 종류의 글이 똑같겠지만 에세이는 특유의 멋이 있었다. 작가의 일기장 같기도 했고, 이따금씩 낙서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한순간 느낀 감정과 생각을 몇 페이지로 되살려냈고,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 일을 겪은 주인공의 생각을 읽어 내려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는지 궁금했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그 궁금증을 에세이로 풀었다. 오랜만에 내가 에세이를 즐겨 읽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책장을 덮고 겉면에.. 2020. 10. 24.
이탈리아소설 '어른들의 거짓된 삶' 리뷰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떡하면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이제 곧 있으면 삶의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에 돌입하지만, 아직도 가끔은 ‘내가 지금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 건가?’하는 의문과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낀다. 또래들은 가장이고, 이미 대부분 아버지가 되었고, SNS에서 추천해주는 친구들은 더 이상 철없이 방황하는 철부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성장 소설은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고, 시련을 겪고, 어린 주인공은 방황하고 흔들린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시련의 크기는 무척이나 크고 거대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전보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성숙하지 않으면 어른이.. 2020. 10. 8.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 리뷰 중세 유럽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좁고 꼬불꼬불한 차도, 울퉁불퉁한 인도, 사람을 기다리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광장, 낡은 건물과 가스등 모양을 한 거리의 가로등까지 옛 풍경이 그대로다. 도시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 같다. 눈을 돌리면 볼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나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유럽의 일부 도시들은 몇백 년, 혹은 그 이상 현재와 같은 도심으로써의 기능과 지위를 지켜오고 있다. 나는 이방인이 되어 도시를 여행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느껴보려 애써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차도 위를 달리는 전기 자동차와 낡은 건물에 들어선 익숙한 햄버거 가게들 뿐이다. 처음 유럽을 여행할 때 기억을 떠올리면 이런.. 2020. 10. 6.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 리뷰 내가 만약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삶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거라면? 나는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태연한 척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너무 익숙하다. 국내에도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와 영화가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자동으로 떠오르는 클리셰가 있다. 서로 뒤바뀐 삶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원망과 갈등, 시기와 질투, 그리고 복수 같은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그림은 이제 지겹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원작으로 알려져 국내에서 더 유명해진 세라 워터스Sarah Waters의 《핑거스미스》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이용하지.. 2020. 9. 29.